•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Ⅰ. 근대 교육운동
  • 5. 근대적 교과서의 편찬
  • 3) 통감부하의 교과서
  • (3) 통감부의 교과서 통제

가. 통감부의 교과서 편찬 방향

 1906년 2월 설치된 통감부는 교육침략정책을 추진하여 학제를 개편하고 교육통제를 강화하면서 교과서 편찬에 직접 관여하였다. 이들의 교육방침은 식민지지배의 준비단계로서 이른바 ‘順良化’를 정하고 한민족의 자긍심을 없애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통감부의 교과서 편찬의 기본방침은 일본인을 교과서편찬위원에 임명하고 이들로 하여금 일본어로 교과서를 편찬하는 일이었다. 이에 앞서 학부에서 교과서 편찬업무를 담당한 일본인은 학부참여관 시데하라(幣原坦), 학부참여관 부통역관 우에무라(上邨正已), 교과서편집 촉탁 와다세(渡瀨常吉), 교과서편집 촉탁 타카하시(高橋亨) 등이었는데 통감부설치 직후 시데하라의 후임으로 부임한 미쓰치(三宅忠造)는 교과서편찬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교과서편찬위원회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교과서 편찬을 시작하였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일본어로 교과서를 편집하는 것은 그 동안 전개되어 온 민족교육을 억제하고 한민족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방향에서 진행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민족적 반항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통감부의 교과서정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대표적인 민족언론인≪황성신문≫과≪대한매일신보≫였다.≪황성신문≫은 시데하라가 앞장선 일본인의 교과서 편찬에 대해 비판하면서 일문은 일본어교과서에, 다른 교과서는 일문으로 편찬하지 말 것과 한편으로는 국가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우리 나라 역사와 지지를 교육하는 것을 제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275)≪皇城新聞≫, 1906년 4월 5일. 또한≪황성신문≫은 교과서가 일본인에 의해 편집되기 때문에 학생들의 ‘祖國之精神’이 제대로 배양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논설을 게재하기도 하였다.276)≪皇城新聞≫, 1906년 5월 30일.

 통감부는 개학일까지 완본이 나오기 어려워 假綴해서 보급할 정도로 교과서 편찬과 보급을 서둘렀음을 보여준다. 이 때 편찬된 교과서 가운데는 그 동안 중요시되어 왔던 과목인 역사나 지리교과서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1909년 5월 보통학교용 수신서 4책·국어독본 8책·일어독본 8책·한문독본 4책·이과서 2책·도화임본 4책·습자첩 4책·산술서 4책이 편찬되었으며 더 이상 다른 교과목의 교과서는 편찬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통감부의 교과서정책은 한민족의 국민정신을 훼손시키는 것으로 인식한≪황성신문≫은 일본의 정책에 대응하여 국민정신을 배양하는 길로 본국사연구강화를 주장하면서 본국사연구를 소홀히 하였던 학문풍토를 비판하면서 즉 국사를 통해서 人智를 키우고 國性을 배양할 수 있으며 국사연구는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고 나라의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길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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