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2. 한국어 연구
  • 4) 문법의 연구
  • (3) 주시경의≪국어문법≫

(3) 주시경의≪국어문법≫

 주시경 자신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國語文法≫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93년이요 이것을 일단 완성한 것은 그의 나이 겨우 23세 되는 1898년이라고 한다. 이 기간은 그의 培材學堂 학생 시절에 해당한다.

 우리는 아직도 주시경이 어디서 언제 문법에 관한 지식을 얻었으며 어떻게 그처럼 젊은 나이에 그의 문법체계를 수립할 수 있었는지 자세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문법이란 학문이 새로 도입된 초창기에 국어의 특수성을 살린 문법체계를 수립했다는 것은 확실히 하나의 기적이요 신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저서의 여기저기에서 우리는 이 신비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자신이 쓴 기록에 의하면 그는 17세 때에 “英文의 子母音을 解하고 轉하여 國文字의 자모로 解할새 모음의 分合됨을 연구”(≪國語文典音學≫)하였다 한다. 이것은 그의 국어연구가 영어의 지식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그의 학문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영어·중국어·일본어의 문법 연구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국어문법≫에서 품사의 이름에 대하여 註를 단 속에 “근일 日本과 支那에서 漢字로 문법에 쓰이는 명칭이 있으나…”라고 한 것에 그 일단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국어문법≫의 방침을 밝힌≪이 온 글의 잡이≫에서 그가 한 다음말은 지극히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 글은 今世界에 두루 쓰이는 文法으로 읏듬을 삼아 꿈임이라. 그러하나 우리 말에 맞게 하노라 함이라.

 이것은 그의 문법연구의 기본 태도를 천명한 것이다. ‘今世界에 두루 쓰이는 文法’이란 말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문법이란 뜻으로 해석된다(주시경이 실제로 알고 있었던 것은 영어·일본어·중국어의 문법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외국어의 문법을 그대로 모방하려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우리 말에 맞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것이 주시경의 문법을 독창적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이 된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유길준은 줄곧 ‘文典’이란 말을 썼는데, 주시경은 줄곧 ‘文法’이란 말을 쓴 것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역시≪국어문법≫의≪이온 글의 잡이≫에 “이 글은 광무 이년 무슐에 다 만들었던 것을 이제 얼마큼 덜고 더함인데 이름을 한자로 국어문법이라 함은 그 때의 이름대로 함이라”라고 되어 있다. 이로 보아 1898년에 이미 이 책의 이름은≪국어문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이 ‘문법’이란 말을 보았을 가능성이 있는 책들을 찾아 보면 우선 저 위에서 말한 언더우드(H. G. Underwood)의 책의 內題인≪韓英文法≫을 들 수 있고, 일본에서 20세기 벽두부터 문법이란 말이 널리 사용된 사실을 들 수 있다. 연대로 미루어 보거나, 주시경이 언더우드를 잘 알고 있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언더우드의 책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많으리라고 생각된다.

 주시경의 문법에 관한 저서로 최초로 출판된 것은≪대한국어문법≫이다. (표지에는≪國文講義≫라 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서울 尙洞靑年學院에서 가르친 교재로서 간행되었다(1906). 그런데 이 책은, 그 발문에도 있는 것처럼, 음운에 관한 부분뿐이다. 그의≪국어문법≫첫머리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 점 1908년에 간행된 그의≪國語文典音學≫과 성격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는≪국어문법≫을 간행하기 전에 두 차례나 그가 말하는 ‘音學’에 관한 저술을 낸 것이다. 그의≪국어문법≫이 간행된 것은 1910년 4월이었다(이 책의 再版이≪朝鮮語文法≫이란 이름으로 1911년에 간행되었다).

 ≪국어문법≫의 특징으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그 문법 술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순수한 국어 요소를 소재로 해서 ‘임’, ‘긋’, ‘엇’과 같은 新語들을 만들어 썼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는 학술용어란 한자로 만들든 국어로 만들든 정의를 내려야 하기는 일반인데, 국어문법에 국어를 쓰는 것이 옳은 일이며, 한자로 지으면 오히려 그 뜻으로만 해석하려는 폐단이 있고 일본이나 중국에서 쓰는 술어들은 국어에 적당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시경의 식견이 얼마나 높은 데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맹목적인 국수주의자가 아니었다.

 ≪국어문법≫전체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독창성이다. 그도 역시 외국어 문법책 또는 외국인이 쓴 국어문법 책을 참고했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위에서도 인용했지만 그 자신 “이 글은 금세계에 두루 쓰이는 문법으로 읏듬을 삼아 꿈임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그러하나 우리 나라 말에 맞게 하노라 함이라”고 한 것이 주시경의 문법연구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그의 문법체계에서는 앞에 말한 유길준이나 뒤에 말할 金熙祥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외국문법의 영향 관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주시경은 국어에 9품사를 두었는데 그 중에 주목되는 것은 ‘언’, ‘겻’, ‘잇’, ‘끗’이다. ‘언’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관형사(매김씨)라고 하는 것으로≪국어문법≫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먹다, 먹고’, ‘희다, 희고’에서 ‘먹’, ‘희’만을 움(동사), 엇(형용사)이라 하고 ‘다’는 끗, ‘고’는 잇이라고 했던 것이다. ‘겻’이란 ‘사람이’, ‘소를’의 ‘이·를’ 등을 말한다. 말하자면 그의 문법적 특징은 체언과 토, 용언의 어간과 어미를 나누어 별개의 단어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시경의≪국어문법≫은 우리 나라 문법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았던 유길준의≪대한문전≫보다도 그의≪국어문법≫이 더 큰 영향을 미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국어문법≫의 내용이 매우 독창적이며, 그것을 가르치는 주시경의 지성에 많은 젊은이들이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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