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1. 근대 문학의 발전
  • 2) 개화기의 시가 장르
  • (2) ‘사회등’ 가사를 비롯한 우국가

(2) ‘사회등’ 가사를 비롯한 우국가

 갑오경장 이후 외세의 침략이 더욱 심각해지고 附外 세력의 발호가 날로 극성스러워지자, ‘항일·구국의 急先鋒’으로 기대를 모으던≪대한매일신보≫는 항일·구국의 이념을 펴는 수단으로 문학 작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 냈다. 이 신문이 그러한 방안을 마련한 것은, 문학 작품이 합리주의적 논리의 바탕 위에서 성립된 이데올로기로서의 신문 논설의 한계를 돌파해 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404)김윤식·정호웅,≪한국소설사≫(예하, 1993), 19∼27쪽.≪대한매일신보≫의 그러한 노력이 실현되어 나타난 것은 ‘사회등’ 가사, ‘사조’란의 시조, 민요 개작 같은 우국의 시가와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 ‘거부오’ 같은 토론체 소설, 애국 전기 작품 등이다. 이 작품들 중에서 작품의 수량과 그에 따라 긴 시간에 걸쳐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사회등’ 가사이다.

 ‘사회등’ 가사는 4음 4보격을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가사의 율격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분연체로 짜여지고 반복구를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가사의 유장하면서도 응집력을 갖지 못한 형태에서 벗어난 양상을 보여 준다. ‘사회등’ 가사의 형태와 함께 이 시가 유형의 중요한 특질을 형성하는 것은 풍자이다. 문학에 있어서의 풍자가 항의하려는 의도에서 태어난, 예술로 다듬어진 항의라면, ‘사회등’ 가사의 풍자는 우리 강토를 유린하는 침략자와 그 침략 세력의 앞잡이로 전락한 부외 세력을 질타하고 공격·비판하려는 의도로 충전된 것이다.

 ‘사회등’ 가사는 원래≪대한매일신보≫의 고정란인 ‘시사만평’의 성격을 이어받으면서 발생한 시가이다. ‘시사만평’란은 ‘사회등’ 가사 이전에 산문으로 이루어진 만평을 싣고 있었는데, 율문으로 이루어진 ‘사회등’ 가사 작품들로 그 만평의 기능을 대신하도록 한 것이다. 이 신문이 이렇게 ‘사회등’ 가사로 하여금 산문 만평을 대신하도록 한 것은, ‘사회등’ 가사가 갖춘 율문의 감응력이 산문 만평에 비하여 독자들에게 더 생생하게, 더 구체적으로 호소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점을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사회등’ 가사의 편수는 모두 610여 편에 이른다. 이 유형의 시가는 1907년 12월 18일자의 ‘聞一知十’에서 시작되어 1910년 8월 17일자에 이르기까지≪대한매일신보≫의 고정란에 거의 빠짐없이 게재되었는데, 긴 시간에 걸친 게재로 말미암아 시기에 따라 그 형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一國을 헌動니 內閣大臣의 權利로다

나라權利 다팔아셔 自己地位 買得니

獨專其利 됴흘시고

 

二千萬衆 우리同胞 生命財産 엇지나

不顧生靈 져官吏들 貪虐에만 從事니

浚民膏澤 됴흘시고

 

三百四十 餘郡中에 남은土地 얼마런고

六里靑山 져긔잇다 六國山川 指點니

稍蚤食之 됴흘시고

 

六大部洲 列强國에 大韓獨立 公布터니

露日講和 된然後에 保護國이 웬말인가

弱肉强食 됴흘시고

 이 작품은≪대한매일신보≫1907년 12월 18일자에 게재된 ‘문일지십’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회등’ 가사의 첫 출발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인데, 위에 인용한 대목들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인 숫자 노래의 영향을 받아 각 연의 첫글자로 1∼10의 숫자를 사용하면서 작품 전편을 10련으로 구성하였다. 위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등’ 가사는 부정적인 인물 군상들을 비판·매도·풍자한 작품으로 4음 4보격, 분연체, 후렴구를 형태상의 특징으로 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