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2. 식민지 수탈구조의 구축
  • 2) 수탈을 위한 농업정책과 한국농민의 고난
  • (1) 관권의 농사 개입

(1) 관권의 농사 개입

 1910년대에 일제가 한국에서 실시한 농업정책은 기본적으로 식량과 원료를 일본으로 최대한 많이 반출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식량과 일본의 산업에 도움이 되는 원료를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농업기반을 재편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생산된 식량과 원료를 값싸고 신속하게 수집하여 가져갈 수 있는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제가 한국농민의 농사와 가공 및 거래에 강압적으로 개입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일제가 한국의 농업과 농민에게 가한 경제외적 강제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지형·지목의 변경에 관한 제한, 경작물 종류에 관한 제한, 경작물 품종의 제한(일본품종 경작 강요), 경작방법(소갈이·씨뿌리기·못자리·모내기·김매기·피뽑기·수확), 시비(판매비료 사용·시비회수 증가), 水利, 제초·꼴베기·잡곡조제·포장 등에 관한 제한, 畦作방법의 이용에 관한 제한, 소작권의 매매 및 소작지의 임대에 관한 제한 등, 또 소작 농민은 마름에 대한 보수, 미곡 검사의 수수료, 지주·마름·추수원(소작료 징수를 위해 임시로 고용한 사람)의 향응접대비, 斗量賃 및 조제장 사용료, 지주와 마름에 대한 선물, 지주와 마름 댁의 수리·소제의 수발 및 관혼상제시의 노력 제공 등의 잡역을 부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101) 朝鮮農會,≪朝鮮の小作慣習≫, 119∼120쪽.

 일제는 한국의 농업을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관의 지시에 따라 못줄을 대고 정사각형으로 모내기를 하지 않으면 모를 밟아버리거나 뽑아버렸다. 그리고 벼의 수확과 가공에 이르는 전과정에 일일이 간섭하고 철저히 감시했다. 당시 한국농민의 생활에 실제로 접촉했던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소작관은 권력행사의 실상을 이렇게 회고했다.

벼를 탈곡 조정할 때 멍석을 펴지 않은 것은 道令으로써 벌금을 물게 한다고 하는 등의 간단한 법령으로 실행을 강요하고, 위반자를 처벌했던 사례는 미작지대인 각 도에서 이미 경험한 바이다. … 정말로 조선의 미작농업의 개발은 팽창하는 내지 인구에 대한 식량공급이라는 국방경제적인 자급정책의 필요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개시돼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지도의 대상인 농민은 기술면에서나 자력면에서나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극단적인 권력적 지도를 가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권력적 개발은 일본인적인 성급함을 갖고 시행했기 때문에, 농민의 이해라고 하는 것 등은 고려되지 않았고, 뒤돌아 볼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농민은 오직 관청적 지도의 명하는 바에 따라 배급받은 종자를 배운 모판에 뿌리고, 주어진 못줄에 따라 正條植을 하고, 정해진 날에 비료를 뿌리고, 제초를 하고, 명령받은 날에 기장을 뽑고, 풀을 베고, 제시된 방법에 따라 건조 조사를 행할 뿐이었다. 거기에는 오직 감시와 명령만이 있었다. 설령 있을 법한 것이라 하더라도 농민의 창의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久間健一,≪朝鮮農政の課題≫, 1943, 7∼8쪽).

 일제가 한국의 농사를 개량하고자 한 이유는 일본 국내 인구에 대한 식량공급이라는 국방적·경제적 자급정책의 필요 때문이었다. 한국농민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이 점을 꿰뚫어보고 있던 한국농민이 일본식 농법의 도입에 적극적일 까닭이 없었다. 일제는 한국농민을 설득하거나 계몽하기보다는 권력을 행사하여 한국농민에게 일본식 농법을 강요했다. 농산물 중산을 위한 우량품종의 보급, 경작기술의 개선, 비료의 增施, 퇴비의 조성 등 모든 지도는 관청적 획일성과 권력적 강압성을 갖고 上命下達式으로 추진되었다. 한국농민은 자신의 농사에 흥을 낼 수 없었다. 그저 지주와 관청이 시키는 대로 모를 내고, 비료를 뿌리고, 김을 매고, 풀을 뽑고, 벼를 말리면 그만이었다. ‘농민의 창의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은 것’이 1910년대 식민지 농정의 본질이었다.102) 鄭然泰,≪日帝의 韓國 農地政策≫(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4), 112∼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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