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
  • 4) 상해와 북경에서의 밀정·친일배 처단 활동

4) 상해와 북경에서의 밀정·친일배 처단 활동

 윤봉길 의거 이후 상해의 일본군 헌병대와 총영사관이 독립운동자 탄압에 광분하자, 이에 편승한 밀정의 암약과 노골적 친일분자의 등장으로 상해 한인사회의 기류도 다소 혼탁해졌다. 그러나 몇몇 의열단체가 이를 좌시하지 않고, 밀정과 친일·부일배 숙청에 힘을 쏟았다.

 먼저 남화한인청년연맹이 鄭華岩을 중심으로 이 일에 앞장서서, 1932년 7월에 延忠烈과 李圭瑞를, 1933년 5월에는 李鍾洪을 吳冕稙·李達 등이 교살 처단했다. 또한 1933년 8월에는 친일거부 玉觀彬을, 12월에는 프랑스조계 공부국 형사의 지위를 악용해 온 玉成彬을, 1935년 3월에는 조선인거류민회 부회장인 주구 李容魯를, 모두 嚴亨淳(嚴舜奉)의 주도로 사살 처단했다.74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1, 822∼840쪽.
無政府主義運動史編纂委員會 編, 앞의 책, 348∼364쪽.

 병인의용대도 1933년에 조직을 정비한 후 밀정 또는 그 혐의자의 숙청 작업을 재개하여, 1935년까지 사이에 石鉉九·金元泰·李泰瑞를 사살하고 柳寅發에게 중상을 입혔다.74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4(1969), 720∼723쪽. 의열단원 김시현과 盧乙龍도 1935년에 북경에서 부일배들을 처단하였다.748)社會問題資料硏究會 編,≪思想情勢視察報告集≫3(京都:東洋文化社, 1976),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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