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2. 노동운동
  • 2) 노동조합의 조직
  • (3) 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

(3) 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

 서구에서 제기된 동일 산업부문의 전노동자를 하나의 조합으로 조직함으로써 자본가에 대한 효율적인 투쟁을 전개하려는 산업별 노동조합 운동은 독점단계의 자본주의에서 생산기술의 고도화와 대규모 생산의 일반화, 공장내의 분업과 아울러 사회적 분업의 진전, 이에 따라 미숙련·반숙련 노동자들이 생산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것 등을 배경으로 하여 대두했다. 식민지 조선에도 1929년 세계공황을 계기로 1930년대 이후 일본 독점자본이 대거 진출하면서 서구와 같은 산업별 노동조합 건설을 위한 사회경제적 기반이 일정하게 조성되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경우 전반적으로 볼 때 산업별 노조로의 이행은 사회경제적 근거보다 정치적 이유가 훨씬 강했다. 즉 당시의 노동운동가들은 흔히 코민테른 등의 국제적 원조나 지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일제하의 노동운동은 세계적 차원의 혁명운동의 한 고리로 전개되었으며, 산업별 노동운동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이와 같이 당시 전세계 노동운동의 대세였던 산업별 노조운동이 식민지로 ‘이입’되었던 측면을434) 김경일, 앞의 책, 250∼252쪽. 무시할 수 없다. 1928년 1월에 조선문제에 대한<코민테른 결정서>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대중조직은 산업별 조직이며 산업부문에서 그러한 조합의 토대를 건설하는 것이 공산주의자의 임무라고 하여 조선에 산업별 조합의 조직을 촉구했다.

 한편 1926년 7월 부산지방 철공조합의 창립을 보도하면서 “부산의 노동운동이 아직 산업별로 조직화되지 못한 것은 일반이 다 유감으로 인정하던 바”라고 했다. 1927년 8월 조선노농총동맹 상무집행위원회에서 노동자·농민 양단체의 분리방침에 따른 규약 통과 등에서 이미 제시되었다.435) 김경일, 위의 책, 245∼246쪽.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식민지 조선 내부에서도 산업별 노조 건설에 대한 관심은 1920년대 후반기부터 조선 노동운동의 발전 과정에서도 고조되고 있었다.

 당시의 산업별 노조운동은 구체적으로는 ① 독점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증대하고 있는 미숙련·실업 노동자를 포괄할 노동조합을 조직해야 한다는 점, ② 노동조합의 활동과 조직의 중심을 이전의 가두에서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는 공장과 기업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 ③ 이러한 조직대상과 범위의 변화는 종래의 직업별 노조로는 담보할 수 없었다는 점 등에 의하여 제기되었다.436) 김경일, 위의 책, 253쪽.

 산업별 노조방침은 1926∼1927년에 채택되어 1928년 6월 서울의 인쇄출판업에서 가장 먼저 실행되었으며, 이후 1930∼1931년에 전국 각지 노동단체들을 통해 실현되었다.437) 김경일, 위의 책, 246쪽. 산업별 노조로의 방침변화와 그 구체적 실현은 노조들의 강령이나 요구조건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1930년 5월 서울출판노조의 조합원 위안회에서는 “① 우리는 출판노동자의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② 우리는 출판노동자의 계급적 훈련을 획득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기본강령 등을 내걸었다.438) 김경일, 위의 책, 247쪽. 1929년 원산총파업의 패배 이후 1930년 1월 원산총파업 1주년 기념대회에서 3,000여 명의 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채택했다.

一. 8시간 노동제를 채택하자.

 一. 임시고용제도 및 봉건적 청부노동계약을 즉시 철폐하자.

 一. 일급제도를 즉시 실시하자.

 一. 최저임금제 설정.

 一. 청년노동자는 6시간 노동제를 획득하자.

 一. 산업별 노동조합 및 공장위원회의 조직 및 강화.

 一.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의 획득.

 一. 언론·출판·결사·집회·파업·시위의 자유.

 一. 파업·질병 및 부득이한 사정에 의한 해고를 절대 반대하자.

 一. 해고된 노동자의 취업 자유를 획득하자.

   (≪중외일보≫, 1930년 1월 19일).

 당시 산업별 노조로의 재편과 관련하여 노조 내부에 부인부나 청소년부·실업부 등의 전문부서를 설치한 것도 특기할 만 하다. 이는 미숙련 노동자의 대다수를 이루는 여성이나 청년·소년 혹은 실업자들을 단일조직으로 묶기 위한 조직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예컨대 1931년 무렵의 출판노조는 조직부서로 이전의 인쇄공조합과 유사한 상무부·선전조직부·조사연구부·법률쟁의부·재정부·교육출판부에 더하여 공제부·부인부·실업부·청소년부 등의 전문부서를 두었다.439) 김경일, 위의 책, 253쪽. 또한 산업별 노조의 활동과 조직의 중심이 공장이나 기업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것은 공장직공대표회의나, 조합원 위원회, 공장의 班조직의 설치·강화 등으로 나타났다.

 산업별 노조 건설운동은 전국차원의 단일조직을 결성하여 전국적 연대와 단결을 지향했다. 즉, 1929년 7월 20일에 결성된 전기종업원조합, 1930년 4월에 조직된 전조선운수종사원조합기성회도 산업별 전국조직을 염두에 두었다. 이러한 합법적 영역에서의 산업별 노조 결성 시도는 1930년대 이후 비합법 영역으로 옮아갔다. 즉 각 부문에 산업별 좌익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하여 각 작업장에 3∼5명으로 구성된 공장반(세포)을 기초로 노조분회를 조직하여 각 지역에 산업별 좌익 노조(지회)를 결성하는 한편 각 산업별 조합의 지부는 지역적으로 지부(지방)→도→중앙(전국)의 협의회를 아래로부터 위로 조직한 다음에 이를 통일하여 전조선 좌익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440) 김경일, 위의 책, 254∼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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