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4. 형평운동
  • 6) 형평사의 해소
  • (3) 형평사 해소론의 대두

(3) 형평사 해소론의 대두

 1929년 말∼1932년 시기에는 세계대공항의 여파로 인해 학생·노동자·농민들이 일제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에 광범하게 진출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그 이전·이후 시기와 구별되는 민족해방운동의 일대 고양기가 조성되었다.

 당시 조선의 운동계·사상계는 민족개량주의가 주도하는 자치운동과 사회주의가 주도하는 혁명적 대중운동의 경향으로 대별되었고, 그 중간에서 비타협적 민족주의는 동요하였다.

 이와 같이 이 시기의 조선의 각 정치세력은 독자의 정세인식에 기초하여 상이한 정치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각 정치세력들의 정세인식상의 상이성은 그들 상호간의 대립과 충돌을 공고하게 하는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신간회를 비롯하여 근우회, 조선청년동맹, 형평사 등의 해소론이 제기되고 그 반대론도 표명되었다. 주지하듯이 이들 단체의 해소문제는 단지 그 단체에 대한 정책의 차원을 넘어 전체 민족해방운동의 세력배치 계획, 통일전선전술과 맞물려 있었다. 따라서 해소문제는 1930년대 전반기 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경향과 직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신간회 내부에서 해소론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 12월부터였다.615) 愼鏞廈,<신간회의 창립과 민족운동과 해소>(국사편찬위원회,≪한민족독립운동사≫8, 1990), 303쪽. 1930년 신간회·근우회·조선청년총동맹의 지도부 구성과 태도에서는 개량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었다. 이는 자치운동과의 제휴, 합법운동으로의 전환 등 허다한 의혹과 아울러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 좌파계열의 격렬한 항의·비난을 불러 일으켰으며 신간회 해소론이 주창되는 직접적 계기를 형성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의 해소투쟁은 전국적 범위에서 전개되어, 결국 신간회는 1931년 5월에 해소되었다.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한 신간회의 해소투쟁은 혁명적 농·노조운동과 결합하면서 노농운동의 역량강화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기부터 극단적으로 강화된 일제의 탄압은 1928년 치안유지법의 개악, 일본 田中義一 내각의 파쇼화, 그리고 그것의 연장으로서의 山梨半造 총독의 조선에 대한 파쇼적 통치와 일제경찰의 억압기구가 강화되었고, 만주사변 이후 합법적 노조·농조가 강제 해산을 당하는 등 합법적 활동 영역이 점차 축소되면서 사회주의 세력의 활동 중심은 점차 비합법 영역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합법공간은 그들이 비판해 마지않던 ‘개량주의자’ 혹은 ‘합법주의자’의 차지가 되었다.

 이렇게 신간회가 해소되자 이어서 조선청년총동맹(1931년 5월)·근우회 등 많은 대중운동단체 또한 해산 내지 활동을 정지해 갔다.

 이러한 산간회의 해소를 둘러싼 당시 사회상황은 곧바로 형평사에 영향을 미쳤으니, 제일 먼저 수원형평사가 1931년 3월 임시대회를 열어, 4월에 있을 전국대회에서 형평사 해소안을 제의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내용은 형평사는 小부르주아집단이기 때문에 단호히 해소하여 屠夫勞動組合으로 전환하여 일반 산업노동조합과 적극적으로 제휴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수원형평사의 이러한 움직임에 이어 襄陽·笠場형평사가 해소를 결의하자, 禮山·原州·屯浦 등의 형평사는 해소에 반대하여, 해소문제를 둘러싸고 형평사내는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해소에 반대하는 입장은 “형평운동이 민족해방운동으로부터 경제투쟁으로 전환한 것은 사실이나 전반적 추세로 보아 해소문제는 시기상조이므로 이를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즉 해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 또 온건파의 핵심간부들도 해소안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들은 형평운동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내세워 해소안에 반대했는데, 형평사가 다른 사회운동과 협력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서로 성격과 과제가 다르기 때문에 해체하여 통합한다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의 사회운동단체의 해소파에 따르면 해소는 한 조직체의 해산을 뜻하는 해체와는 달리, 한 운동에서 다른 형태의 운동으로 전환하는 변증법적 자기발전을 뜻하였다. 따라서 이때의 해소는 해소운동을 뜻하는 것이며 ○년 ○월 ○일 전체회의에서 ‘해소’를 가결했다는 것도 해체를 가결한 것이 아니라 해소운동을 가결했다는 의미였다. 예를 들면 신간회 해소는 신간회라고 하는 한 단체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신간회가 가지는 전술적·조직적 오류를 극복하고 ‘보다 고도의 운동방향으로 도약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단체 해소론이 형평사 해소론자에 의해 그대로 형평사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朴好君은 1931년 6월호≪批判≫의<형평운동의 今後>라는 글에서 먼저 수원형평사의 해소 결의에 대해 “도부들로만 도부조합을 조직하고 그 지부를 현 형평사 지부가 있는 곳마다 둔다고 한 것은 산업별적 조직의 전체적 방법을 몰이해하였고 또 노동조합조직원의 구성적 성격을 몰각하는 등의 오류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형평사를 해소하여 각 지역의 편차에 따라 노동조합 또는 농민조합을 조직할 것을 주장하였다. 박호군은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의 관련 피고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사건의 재판과정에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형평사 해소에 관하여 진술하였다.

문 : 그대들의 형평사 해소론의 논지는 무엇인가.

답(박호군) : 형평사가 있으면 유산사원은 더욱 더 부유해지나, 그 반대로 무산사원은 더욱 더 빈곤해지는데, 그 이유는 유산사원이 형평사를 배경으로 무산자의 이익을 착취함으로 그러하다. 예를 들면 우육판매합병회사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자본이 있는 유산계급들이 형평사를 배경으로 조직한 것으로 그들이 이익을 독점하고, 무산사원은 자본이 없다는 이유로 가입할 수 없다. 또 대외적으로 형평사 설립 이래로 일반민과의 사이에는 오히려 형평사가 있으므로 하여 일반민의 감정을 자극하고 분쟁을 유발하는 결과가 되어서 형평사를 해소하고 각 직업별로 도부조합이라든가 우육판매조합이라든가를 조직하는 편이 앞에서 말한 폐단을 제거하게 되고 무산자 사원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피고인 朴好君에 대한 소화 9년 3월 9일 광주지방법원 예심법정 신문조서>,≪李東煥 외 13명에 대한 치안유지법≫재판기록 2, 4,570∼4,587쪽·4,917∼4,936쪽).

 형평사내에서도 무산 청년사원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 급진파는, 형평사가 비록 백정들의 인권해방을 위한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유산백정과 무산백정의 결합은 조직적으로 사실상 모순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형평운동의 계급적 투쟁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당시는 소위 합법운동 해소론이 좌익계의 지배적 풍토로 받아들여졌던 직후였다. 이에 따라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내에서 해소론이 대두되었던 것 같이 형평사에도 적용시켜 일제와의 타협주의에 빠진 개량주의적인 온건파와의 협동에 의해 형평사를 존속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616) 金俊燁·金昌順, 앞의 책(1973), 162쪽. 그리고 해소론의 이론적 근거는 신간회의 해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30년의 프로핀테른의<8월테제>에 의한 ‘혁명적 조합은 산업별로’라는 취지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9월테제>·<12월테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총본부에서의 대립과 해소파와 비해소파의 논쟁은 지방대회의 단계에서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급진파의 형평사 해소논쟁은 형평사원으로서는 식자층이며 유산층에 속하는 온건파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형평사 집행부를 끝내 장악하지도 못했고 또 해소론도 실현시키지 못했다. 또한 급진파는 1933년 전국대회를 앞두고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으로 100여 명이 검거됨으로써 형평사내에서의 활동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1933년에 이르러 형평사는 張志弼 등의 온건파에 의해서 완전히 장악되게 됨으로써, 당시 합법적 노조·농조가 강제 해산을 당하는 등 합법적 활동 영역이 점차 축소되면서 사회주의 세력의 활동 중심은 점차 비합법 영역에 의존하게 되고, 합법공간은 그들이 비판해 마지않던 ‘개량주의자’ 혹은 ‘합법주의자’의 차지가 되는 상황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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