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국가총동원법>이 일본에서 공포된 것은 1938년 4월 1일이었고, 이는 곧이어 5월 10일 조선에 확대되었다.<국가총동원법>은 전시 국가의 총력을 발휘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그에 따라 모든 물자·산업·인원·단체·근로조건·생산·유통구조·출판·문화·교육에 이르기까지 통제·징발·징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057)조동걸,<日帝末期의 戰時收奪>(≪千寬宇先生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 정음문화사, 1985), 963쪽. 이에 따라 조선은 국가총동원체제에 편입됨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전시수탈의 대상이 되었지만, 법적인 장치만으로 조선인들을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동원시킬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식민통치를 시작한 이래 조선인들의 저항의식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일제로서는 조선인들의 사상을 어떠한 형태로든 통제하면서 일제에 대한 저항, 전쟁수행에 대한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는 조선인들을 ‘황국신민’으로 거듭나게 해야 하는 필요성이 절감되고 있었다.

우선 일제는 중일전쟁 발발 1년 후인 1938년 7월 7일부터 일본에 호응하여 國民精神總動員運動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명칭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조선인들의 정신력을 종합하여 일본통치에 순응하도록 하는 목적과 이러한 정신상태가 초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조직화하고 훈련을 거듭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목적은 반드시 정신적인 면에서의 총동원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정신적인 면에 많은 중점을 두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 여러 방면에 걸쳐 운동을 추진시켜 나아가고자 하였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이 1938년 9월 22일에 결정된<國民精神總動員 朝鮮聯盟 綱領>이다.058)國民總力朝鮮聯盟 編,≪朝鮮に於ける國民總力運動史≫(1945), 90∼96쪽. 강령의 내용을 통해 운동의 목적과 이념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번째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통한 내선일체화이며, 두번째가 일제의 戰時國策事業에의 협력, 세번째가 조직과 훈련을 통한 전시체제의 확립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보이는 바와 같이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국가총동원법>의 원활한 적용을 위하여 조선인들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기본작업이었다.

조직면에 있어서도 조선의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일본과 달리 처음부터 행정조직과 일원화된 조직체제를 완비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보다 앞서 愛國班이라는 말단조직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전 조선인을 빠짐없이 감시하고 전쟁동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운동의 식민지적 특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지역 조직과 별도로 직장을 단위로 하는 각종 연맹을 통한 조직화를 병행함으로써 조선인들을 이중으로 조직화해 나아가고 있었다.

특히 국민정신총동원운동 실시에 앞서, 그리고 일본보다도 앞서서 1937년 9월부터 조선에서 실시된 ‘愛國日’ 행사와059)애국일 행사의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神社·神祠의 참배(없을 경우에는 생략한다)
② 皇居遙拜
③ 國旗揭揚(간단한 설비라도 상관없다)
④ 國歌齊唱(제창이 곤란한 경우에는 생략한다)
⑤ 講話(매회 할 필요는 없다)
⑥ 皇國臣民의 誓詞 齊誦
⑦ 天皇陛下 萬歲三唱
(國民精神總動員忠淸南道聯盟,<愛國日ノ一般實施ニ關スル件>,≪國民精神總動員聯盟要覽≫, 1939, 102쪽).
10월에 제정된<皇國臣民誓詞>060)아동용<皇國臣民의 誓詞>其 1:초등정도의 학교 및 각종 幼少年단체용)
① 私共ハ大日本帝國ノ臣民デアリマス(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② 私共ハ心ヲ合セテ天皇陛下ニ忠義ヲ盡シマス(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忠義를 다합니다).
③ 私共ハ忍苦鍛鍊シテ立派ナ强イ國民トナリマス(우리들은 인고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일반용<皇國臣民의 誓詞>其 2:중등학교 및 동 정도 이상의 학교 및 청년 단체와 동등 이상의 유사단체용)
① 我等ハ皇國臣民ナリ忠誠以テ君國ニ報ゼン(우리는 황국신민이며 충성으로 君國에 보답한다).
② 我等皇國臣民ハ互ニ信愛協力シ以テ團結ヲ固クセン(우리들 황국신민은 서로 信愛 協力하여 단결을 공고히 한다).
③ 我等皇國臣民ハ忍苦鍛鍊力ヲ養ヒ以テ皇道ヲ宣揚セン(우리들 황국신민은 忍苦鍛鍊力을 길러서 皇道를 선양한다).
(조선총독부,<生活ノ刷新ニ關スル件>,≪朝鮮總督府時局對策調査會諮問案參考書≫, 1938, 19∼20쪽).
는 이러한 운동의 목적, 특히 내선일체화 작업에 필요한 정신적 정지작업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상과 같은 정신운동과 병행하여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전시협력운동도 강요하였는데 국산품애용, 소비절약, 국채응모, 비상시국민생활기준양식 실행, 군수품 공출, 근로증가 등의 내용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예로 1938년 8월 결정되어 전 조선인의 생활 구석구석을 통제한<非常時生活基準樣式>을 보면 바로 일제가 강요하고 있었던 戰時下 생활상을 엿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 내용은 의식주의 간단화, 물자의 애용과 소비절약, 허례폐지, 연회제한, 절주절연의 습관 양성, 시간존중, 근로보국정신의 함양, 저축의 장려 등이다. 즉 이러한 기준을 제시하고 조선인들의 생활을 엄격한 규율 속에 통제하려고 하는 의도인 것이다.

일제는 이 운동을 上意下達·下意上達을 위한 관민일체의 운동이라고 선전하고 있었지만,061)朝鮮總督府 官房文書課,≪諭告·訓示·演述總攬≫(1941), 184쪽. 그 실상은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강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고, 조선인들의 방관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운동은 극히 형식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한편 국민정신총동원운동에 대한 조선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관심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운동의 한계성을 타개하고 마침 일본 내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신체제운동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1940년 10월 16일 國民總力運動으로 전환하였다. 일본의 신체제운동이 大正翼贊會라는 명칭으로 진행된 것에 비해 조선에서는 운동의 정치성을 처음부터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민총력운동으로 명명함으로써 조선인들의 정치적 관심이 운동의 조직들을 통해 분출되는 것을 극히 경계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조선인들의 병역의무와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었던 참정권 요구 등 정치적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국민총력운동은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조직과 운동내용을 기본적으로는 그대로 계승하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구체적인 면에서는 몇 가지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즉 국민총력운동에서는 1930년대를 일관하여 진행되어 오던 農村振興運動을 폐지·통합함으로써 일제의 모든 식민지 정책을 총괄하는 운동으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총독이 조선연맹 총재에 직접 취임함으로써 일제의 통치구조와 운동의 조직을 일체화시켜 나아갔다. 또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본질적인 목적은 계승하면서도 ‘高度國防國家體制의 確立’062)朝鮮總督府 文書課,≪諭告·訓示·演述總攬≫2(1943), 16쪽. 즉 국가총력전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의 완성을 보다 강조하고 있었다. 때문에 국민정신총동원운동에 비하여 생산력 확충을 비롯한 공출·증산·저축 등 조선인들에 대한 물질적 수탈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후 국민총력운동은 1945년 초 ‘國民義勇隊 中央本部’로 개편되어 조선을 명실상부한 전쟁동원체제로 밀어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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