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세계적인 규모의 경제공황이 발생하자 제국주의 열강은 심각한 체제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식민지도 많지 않던 후발 제국주의 일본은 이러한 체제의 위기를 쉽게 타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본 제국주의는 공황의 피해를 식민지 조선에 전가하는 한편, 군국주의를 채택하여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기 위한 시책을 실시하였다. 즉 ‘제2의 內地’ 혹은 ‘內地의 大陸分身’241)全國經濟調査機關聯合會 朝鮮支部 編,≪朝鮮經濟年報≫(昭和15年版, 改造社), 107쪽.으로서의 조선에 1929년 부전강 발전소의 송전을 시초로 개시되었던 소위 ‘근대산업’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일전쟁·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면서 군수품 보급기지로서 조선의 역할은 더욱 증대하였다. 그리하여 도로의 개수, 철도의 부설과 같은 교통로를 정비하였으며 연안항로 및 항만을 정비하였다. 특히 조선에 대한 일제의 이와 같은 정책의 변화는 단순히 조선을 ‘병참기지’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朝鮮半島 그 자체가 日滿支블럭을 연결하는 紐帶인 것으로서 소위 ‘대륙루트’ 그 자체라는 인식에 기반”242)위와 같음.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지배정책이 변화하게 된 원인은 첫째, 일본 독점자본은 국내의 과잉자본의 투자지를 필요로 했는데 당시 조선에서는 어떠한 제약도 없이 저렴한 식민지 노동력을 무제한적으로 착취할 수 있었다. 둘째 조선에는 일본 공업의 군사적 재편성을 위한 공업원료와 군수원료 자원이 풍부하였다. 셋째 지리적으로 보아 대륙병참기지로서의 중요성을 가지므로 그에 따른 공업화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넷째 조선에는<중요산업통제법>이 적용되지 않아 경제통제에 대한 자본의 도피처로 조선이 인식되었다.243)小林英夫,<1930年代 朝鮮‘工業化’政策의 展開過程>(≪朝鮮史硏究會論文集≫3, 1967;사계절편집부 편,≪한국근대경제사연구≫, 사계절, 1984에 수록). 이러한 결과 일제는 조선에 대한 공업화정책을 추진하였고 그에 따라 1930년 흥남조선질소비료공장이 설립되었다. 이로 인하여 조선의 기존 산업구조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1933년부터는 새로운 산업구조로의 변화를 보였다.244)허수열,<일제하 조선의 산업구조>(≪국사관논총≫36, 1992), 278쪽. 이와 같은 새로운 산업구조로의 변화, 즉 광산의 개발, 발전소의 건설, 도로와 철도의 부설, 항만의 개수 등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여 한반도의 북부지방에 타 지방민의 유입을 초래하여 농촌사회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화’는 농촌과 농민의 철저한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미 농촌으로부터 구축당한 농민층은 생존을 위하여 한반도의 북부지방과 북만주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일제는 ① 조선 내의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② 농가경제의 성장으로 반도 경제의 향상을 도모하고, ③ 아울러 제국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목적245)朝鮮總督府 編,≪朝鮮産米增殖計劃要領≫(1922), 5쪽.으로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산미증식계획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만성적인 식량부족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일제는 종래의 우량 품종의 보급, 자급 비료의 증시, 경종법의 개선에만 그치지 않고 대규모의 관개개선 등 토지개량을 통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일제는 일부 지주층을 이용하여 수리조합을 설치하여 쌀을 증산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 보고서는 “토지개량에 관한 주요 사업은 수리시설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산미증식계획은 바로 수리조합의 확충계획이었다.”246)淸水健二郞,≪朝鮮ノ農業ト水利組合ニオケル≫(1938), 21쪽.고 하였다. 예를 들면 1926년부터 1934년까지 설치된 수리조합은 192개였는데, 그 결과 자작농과 중소지주의 토지 상실과 함께 소작료의 고율화 현상이 더욱 가속화하였고 수리조합반대운동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247)西條晃,<1920年代朝鮮における水利組合反對運動>(≪朝鮮史硏究會論文集≫8, 1971).
박수현,<식민지시대 수리조합반대운동-1920∼1934년을 중심으로->(≪중앙사론≫7, 1991).
서승갑,<일제하 수리조합 구역내 증수량의 분배와 농민운동-임익·익옥수리조합을 중심으로->(≪사학연구≫41, 한국사학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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