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5) 임시정부로의 합류
  •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중국에서의 한국 무정부주의운동은 1924년에 조직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593)李庭植·金學俊, 위의 책, 274쪽. 그 뒤 1930년 4월 20일에 柳子明·張道善·鄭海里·柳基石 등이 남화한인청년동맹을 조직하여 결성했다.594)金正柱,≪朝鮮統治史料≫10, 801쪽. 이어서 1931년 11월에는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과 연합하여 흑색공포단을 결성하고 “현사회 대부분의 권력을 부정하고 세계 전인류가 자유와 평등을 향유할 수 있는 신사회의 수립”595)金正柱,≪朝鮮統治史料≫10, 871쪽.을 강령으로 내걸고, 1933년 3월에 六三亭 의거를 일으키는 등 많은 활약을 보였다.596)六三亭의거는 白貞基와 李康勳이 유자명의 지도를 받아 상해의 중국요리점인 육삼정에서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을 말한다.

유자명을 비롯한 무정부주의자들은 1937년에 남화한인청년동맹을 이어 조선혁명자연맹을 조직했다. 그리고 이들은 민족혁명당·조선민족해방동맹과 함께 민족전선을 결성했다. 또 1939년에는 진선협회에 가입하였고, 1940년 말에는 무정부주의 청년지도자인 나월환이 이끄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개편되었다. 조선혁명자연맹은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으로 명칭을 바꾸고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1942년 10월에 있은 제34차 의정원회의에서 유자명과 柳林이 의원이 되었고, 이 가운데 유림은 1945년 4월 제38차 의정원회의에서 다시 국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들은 독립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항일투쟁을 전개했지만 주도세력이 되지 못했다. 이념과 투쟁방법의 한계성 때문인 듯하다.597)신일철,<한국무정부주의운동>(≪한민족독립운동사≫4, 국사편찬위원회, 1988), 534쪽. 그러나 무정부주의 세력이 민족전선에 참여한 일시적인 시기를 제외하면 대체로 한국독립당이나 임시정부와 관계를 긴밀하게 가지는 특성을 나타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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