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Ⅰ. 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1) 사립학교 교육

 일제시기에 국내에서의 반일민족교육운동은 합법적 또는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사립학교교육·서당교육·야학교육 등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되었다.

 정규학교 교육인 사립학교 교육은 여전히 반일민족교육운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말 민족교육운동의 중심체였던 사립학교들은 합방후 일제의 탄압으로 급격히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남아있는 사립학교에서도 일제의 감시와 통제에 의하여 반일애국교육의 합법적 활동이 거의 상실되게 되었다. 이리하여 반일민족교육운동에서 사립학교들이 차지하는 지위가 그 이전시기에 비하여 약화되기는 했으나 의연히 이 학교들은 그 운동의 중요한 거점의 하나가 되고 있었다.

 사립학교에서 민족교육이 이루어지고 따라서 일제의 탄압이 있게 된 사실은 일제초기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각 도 장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한 사실만 보아도 명백히 알 수 있다.

학교가 법규를 준수하는가 안하는가, 교원들이 그 직책을 다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것을 감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교육용 서적은 舊學部가 편찬하였거나 인정하여 허락한 것을 사용하도록 할 것이다. 그런데 사립학교에 있어서는 왕왕 그 밖의 것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사립학교 가운데 唱歌나 그 밖의 것으로써 독립정신을 고취하며 또한 제국에 대한 반항을 장려하는 것이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애당초 그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취체상 더욱 주의를 요한다(寺內正毅傳記編纂所,≪寺內正毅伯爵傳≫, 1920년, 629쪽).

 이 시기에는 우리 나라의 사립학교들은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되어 있었다.

 첫째 부류의 사립학교는 애국적 인사들에 의하여 설립 운영된 것으로서 그 수는 사립학교 총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사립학교들은 처음부터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반일 애국사상과 근대적 지식으로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것이었다. 이러한 학교들 가운데서 일부는 그 운영자들의 우유부단성으로 인하여 합방후 식민지 노예교육정책에 순종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립학교들은 그것을 반대하고 계속 반일민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두 번째 부류의 것은 일제의 합방을 전후하여 일제의 탄압을 모면하려고 그 간판을 종교학교로 바꾸어 단 사립학교들이었다. 그렇지만 이 학교들은 여전히 애국적 지식인들이 주관한 학교들로서 반일민족교육기관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고있었다.

 셋째 부류의 것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선교계 학교였다. 이들 선교계의 종교학교는 종교교육뿐만 아니라 민족교육도 실시하여 민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020)박득준,≪조선근대교육사≫(한마당, 1989), 220쪽.

 사립학교 중에는 고등교육기관인 전문학교도 몇 개 있었는데 일제 중기에 설치되어 있던 사립전문학교는 모두 8개였는데 6개교는 개편되거나 신설된 것이고 2개교는 旣設의 전문학교였다.

 즉 사립전문학교로는 1922년에 각종학교인 보성법률상업학교에서 개편된 보성전문학교, 1925년에 각종학교인 숭실학교에서 개편된 숭실전문학교와 이화학당 대학과에서 개편된 이화여자전문학교, 1929년 경성치과의학교에서 개편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1930년에 불교전수학교에서 개편된 중앙불교전문학교와 조선약학교에서 개편된 경성약학전문학교 등이 있었고, 기설의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 등이 있었다.021)김영우·피정만,≪최신학국교육사연구≫(교육과학사, 1995), 4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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