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Ⅰ. 교육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1931년 만주를 침략하여 그곳을 지배하게 된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하여 대륙침략을 본격화하였다. 그리하여 전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에 대해 황국신민화정책 즉 황민화정책을 강행하였다.

 황민화정책이란 한마디로 조선인을 ‘황국신민’ 즉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총칭하는 것이다. 대체로 그 정책은 신사 참배, 궁성 요배, 국기 게양,<황국신민서사>제창, 기미가요 보급, 일본어 보급, 지원병제도의 실시, 제3차<조선교육령>개정, 창씨개명 등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1938년 2월에 공포된<육군특별지원병령>, 1938년 3월의<조선교육령>개정과 1940년 2월부터 시행된 창씨개명 등 세 가지였다. 이것은 1936년 8월 관동군사령관 육군대장 미나미 지로가 조선총독에 취임하면서 일본의 군사적 목적에 의해 강행된 것이다.

 특히<조선교육령>개정은 황민화정책을 영구히 강행할 수 있는 교육적 기반을 형성하기 위한 중심체가 되었다.<조선교육령>개정에 앞서 1937년 10월 2일 일제는<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정하여 항시 그것을 제창하도록 강요하였다.<황국신민의 서사>는 일반 및 상급학교용과 소학교용 두 종류가 있었는데 소학교용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합니다. 3. 우리들은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씩씩한 국민이 됩니다.

 소학교용 쪽에 제정의 의도가 보다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일본어도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소학생시절부터 매일 아침 이것을 제창시켜, 뇌리에 문자 그대로 주입시켰던 것이다.

 다음에 징병제도를 향한 포석으로서, 1938년 2월<육군특별지원병령>이 공포되었다(<해군지원병령>은 1943년). 이것은 물론 일본군의 부족 병력 보충이라는 현실적 요구에 의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한국에서는 그것이 ‘사상동원’, ‘내선일체’의 대중적 운동으로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황민화교육은 황민화정책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것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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