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Ⅱ. 언론
  • 4. 1930년대의 언론
  • 4) 3대 민간지의 폐간

4) 3대 민간지의 폐간

 1920년대 후반부터는 언론의 논조가 점차로 위축되어 기사의 압수, 삭제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1930년대에는 신문경영자들이 수지타산을 가장 우선적인 경영방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런 가운데도 1936년 8월에 일어난 ‘일장기 말소사건’은 탄압속에서도 언론의 항일정신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민간 3대지 가운데서≪동아일보≫와≪조선중앙일보≫가 동시에 무기정간을 당한 끝에≪동아일보≫만이 이듬해 6월 1일에야 정간이 해제되어 이튿날부터 복간하였으나,≪조선중앙일보≫는 영영 문을 닫아야 할 운명에 처했으며≪신동아≫·≪신가정≫·≪중앙≫등 두 신문사가 발행하던 잡지는 모두 폐간되었다.

 이 사건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우승을 차지한 孫基禎 선수의 사진을 실으면서 그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말소하였다가 일어난 필화였다.≪동아일보≫는 8월 25일자 지상에 손기정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그의 유니폼의 가슴에 붙어있던 일장기 마크를 말살하였다. 이 사진은 8월 23일자≪오사카 아사히신문≫에서 제공받은 것인데 고의로 이를 말살한 사실이 발각되었던 것이다.102)朝鮮總督府 警務局圖書課, 앞의 책(1937년판), 123쪽. 총독부 경무국은≪동아일보≫사회부장 玄鎭健을 비롯하여 여러 관련자를 연행하고 8월 29일자로 무기정간 처분을 내렸다. 손기정의 사진을 실으면서 역시 일장기를 말소했던≪신동아≫9월호에 대해서도 일제는 정간 처분을 내리고 신동아 편집부장 崔承萬을 구속하였다.

 총독부는≪동아일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었다.≪조선중앙일보≫도 8월 13일자 제3036호 조간 3면에 일장기를 지운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실었음을 알아낸 것이다.103)朝鮮總督府 警務局圖書課, 위의 책(1936년판), 119∼120쪽.
朝鮮總督府 警務局圖書課, 위의 책(1937년판), 130쪽.
이 사건으로≪동아일보≫는 279일이라는 최장기의 정간 끝에 이듬해 6월 1일 복간되었으나, 재정적 기반이 빈약했던≪조선중앙일보≫는 끝내 복간하지 못한 채 1937년 11월 5일로써 허가의 효력이 상실되어 폐간되고 말았다.

 일제의 탄압과 한국어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동아일보≫와≪조선일보≫는 1940년까지 발행을 계속하였으나 마침내 한국어 민간신문은 더 이상 발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일제가 한국어 말살정책으로 한국어로 발행되는 신문을 없애려 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전시체제하에서의 물자 부족으로 일본 전역에 걸쳐서 신문사를 정비한다는 정책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38년 가을부터 보도의 통일과 아울러 자원고갈을 방지한다는 목적 아래 각 縣별로 통합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신문 정비의 원칙으로는 인구 10만 명의 도시에 하나의 신문만 남긴다는 목표를 세우고 1縣 1紙의 원칙 아래 통합을 강력히 추진하였다.104)<新聞整備 進步>(≪日本新聞年鑑≫, 日本新聞硏究所, 1940년판), 550쪽. 조선에서는 1道 1紙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이 원칙은 일본인 발행의 일본어 신문에도 적용되었으므로 1940년 1월에 평양에서 발행되던≪西鮮日報≫를 폐간하고≪平壤每日新報≫에 통합시킨 것을 시발로 하여 11월에는≪北鮮日日新聞≫과≪北鮮日報≫를 통합하여≪淸津日報≫를 창간하였다. 이 밖에도 전국 각지의 일본어 신문을 통폐합시켰다.105)<全國新聞の整理經過>(≪新聞總覽≫, 日本電報通信社, 1942년판), 19∼29쪽.

 한국어 신문에 대해서도 총독부는≪매일신보≫하나만을 남긴다는 방침 아래 1940년 1월부터 끈질기게≪동아일보≫와≪조선일보≫의 폐간을 강요하였다.106)김상태 편역,≪윤치호일기≫(역사비평사, 2001), 453·455·459쪽. 두 신문은 총독부의 압력을 이길 수 없어 이 해 8월 10일 동시에 폐간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일본이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1920년부터 발행되었던 민간신문은 명맥이 끊어지고 이로부터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의 5년간 또다시 총독부 기관지≪매일신보≫의 독무대가 되었다.≪매일신보≫는 1945년 8월 15일 군국주의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발행되다가, 11월 22일≪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鄭晉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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