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4) 북조선노동당 창당과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
  • (2) 1946년 11월 인민위원회 선거

(2) 1946년 11월 인민위원회 선거

 1946년도는 북한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국가권력의 모체가 형성되고 ‘민주개혁’이라는 이름의 사회경제적 개혁이 달성된 해였다. 이 임시권력과 사회경제 개혁의 성과는 북한 내부에 제한되지 않고,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수립될 통일임시정부의 성격과 그 정부에 의해 수행될 사회경제개혁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러나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는 그 해 5월초에 결렬되어 통일임시정부 수립의 가능성은 희박해져 갔다. 그에 비례하여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점차 ‘임시’적 성격에서 벗어나 실제적인 국가권력으로 轉化해 간다.

 분단국가 수립으로의 지향성은 남북한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었으며, 서로간의 경계심이 그 지향성을 더욱 강화하였다.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1946년 6월 3일에 남한 단독정부수립 계획을 발표하였다(정읍발언). 8월 24일에는 미군정이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설치를 위한 선거 계획을 공고하였으며, 10월 12일 과도입법의원 설치안을 정식 공포하였다. 그리고 10월 말까지 선거를 완료하였다. 북한에서도 1946년 가을에는 보다 권력기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남한에서의 단정수립 움직임에 대응하는 한편,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민주개혁’의 성과를 공고히 함으로써 북한에서의 정치·사회경제적 개혁의 결과가 뒤집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781)북한측의 공식적인 북조선인민위원회 수립 목적은 다음 대목에 잘 표현되어 있다. “북조선에서 이미 실시된 모든 민주건설과 민주역량을 더욱 발전시키고 확대 공고화함으로써 북조선의 민주건설을 기본으로 하는 통일적 임시정부를 하로 속히 건립하는 데 유일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金策,<北朝鮮人民委員會 新發足에 際하여>,≪인민≫2권 3호, 1947년 4월호;≪북한관계사료집≫13, 299쪽).

 북한에서는 1946년 11월 3일부터 1947년 3월 5일까지 약 4개월간 인민위원회 선거를 치루어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에 들어섰다. 선거 방식은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서 추천한 후보자에 대해 찬반 의사만을 흑백투표함에 넣어 표시하는 방법이었다.

 11월 3일 도·시·군인민위원회 위원선거에서 총 유권자 99.6%가 투표에 참가하였으며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서 추천한 후보자를 찬성한 사람의 수는 전체 선거자의 96%였다.782)김일성,<인민위원회의 선거총결과 금후의 중심 임무>(≪인민≫2권 3호, 1947년 4월호;≪북한관계사료집≫13권, 290쪽).

 선거에 의해 총 3,459명이 도·시·군인민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당선 위원들의 정당별 분포를 보면, 노동당 31.8%, 민주당 10.0%, 청우당 8.1%, 무소속 50.1%이었다. 사회 성분별로는 노동자 14.5%, 농민 36.4%, 사무원 36.6%로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그 외에 상인·기업가·문화인·종교인·前 지주들이 부분적으로 당선되었다.

 面인민위원회 위원 당선자는 농민이 57.97%, 노동자 8.33%, 사무원 29%로서, 북한 인민민주주의체제에서 기본 성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 외에 지식인 2.3%, 상인 1.69%, 기업가 0.35%, 前 지주 0.07%, 종교인 0.29%였다. 면인민위원회 위원선거에서 참가자 총수 99.98%, 찬성투표자수 96.2%였다. 리인민위원회 위원선거의 참가자수는 99.85%였으며, 찬성투표수는 86%에 머물렀다.783)리인민위원회 선거에서 특히 황해도와 평안남도는 반대율이 각각 22.3%, 18.89%로 전체 평균보다 상당히 높다. 반면에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는 각각 2.48%, 0.61%로 극히 반대율이 낮다. 두 지역의 정치성향의 차이를 보여준다. 평안북도와 강원도는 중간 형태를 보인다. 면인민위원회 선거에서도 유사한 지역적 특징이 나타난다. 평안남도 반대율이 6.5%, 황해도의 반대율은 6.3%였다(朱寧河,<北朝鮮 面 및 里(洞) 人民委員會委員選擧 總結에 대하여>,≪북한관계사료집≫13, 371쪽∼373쪽). 리·면인민위원회 위원 당선자 정당별 통계표 참조. 노동당은 함경남도에서, 민주당은 황해도에서, 청우당은 평안남도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당선자를 냈다.

 도·시·군인민위원회 위원선거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추천한 후보자에 대해 찬반의 의사만을 물음으로써 스스로 표방한 보통·비밀선거의 원칙에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선거권자 90% 이상이 출석하여 80∼90% 이상이 찬성함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북한 권력측의 의도는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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