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1차 교육과정
  • 초등학교 사회생활 6-1(1차)
  • 二. 우리 나라의 내력
  • 2. 삼국 시대의 모습
  • ○ 신라의 통일

○ 신라의 통일

신라는 원래 그의 발전을 꾀하여, 당과 힘을 합쳐서 대한 반도를 통일하였는데, 당은 신라까지도 지배하려고 하였으므로, 신라는 고구려의 유민과 힘을 합쳐서, 당군과 수십 차 싸워서, 단기 3010년에는 평양, 원산 이남의 땅을 통일하였다.

이 때, 만주에서는 고구려 사람인 대조영이, 발해라는 나라를 세웠다. 당은 이를 두려워하여, 신라와 서로 사귀었으므로, 이후 근 200년 동안, 신라에는 중국 문화가 들어오게 되는 동시에, 중국을 숭배하는 사상도 생기게 되었으며, 이 무렵부터 우리 나라에도 중국식의 성명을 갖게 되었다.

이어, 후삼국 시대(신라, 후백제, 태봉)를 이루다가, 고려에게 통일되었으며, 북쪽의 발해도 글안족에게 망하고(3259), 우리 겨레의 활동 무대는 대한 반도 안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신라는 통일 후에, 전국을 아홉 주로 나누어서 다스렸고, 서울을 금성이라고 불렀다. 불교를 굳게 믿어서, 불국사 같은 큰 절을 많이 세웠다. 서울에는 국학이라는 학교를 두어서, 각종 학술이 발달되어, 최치원 같은 문장, 김생 같은 명필도 나고, 이름난 중이며, 예술가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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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통일 시대 지도
신라 통일 시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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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교통도 발달되어, 장보고는 해상권을 잡았고, 혜초 같은 중은, 인도까지 다녀왔으며, 외국과의 무역도 매우 번창하였다.

일반 국민의 생활도 매우 넉넉하여서 도둑이 없고, 서울의 집은 기와로 덮고, 집이 그을지 않게 솣으로 밥을 지었으며, 거리에는 노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설, 대보름을 즐기는 풍습도 이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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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의 연날리기 풍습
정월 대보름의 연날리기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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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도 불교를 믿어서, 한 때 볼 만한 문화를 이룩하였는데, 그 자취가 만주 동경성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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