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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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교 사회생활 6-1(1차)
  • 二. 우리 나라의 내력
  • 3. 고려와 근세 조선
  • ○ 근세 조선

○ 근세 조선

이성계는, 때마침 중국을 통일한 명 나라의 승인을 얻어 조선을 세우고, 국토를 두만강까지 차지하여, 서울을 한양(서울)으로 옮겼다.

조선은 불교를 멀리하고, 주자학으로써 국가를 다스리니, 관리 사이에 서로 대립되어, 40여 년간 싸우다가, 다시 동인, 서인으로 나뉘어 싸우고, 다시 남인, 북인, 노론, 소론으로 갈라져서 당파 싸움이 심하였다.

이렇게 어지러운 때에, 왜군이 몰려들어(3925), 7년간이나 나라를 짓밟아 고생이 심하였으나, 이순신 장군과, 명군, 의병의 활약으로 물리쳤다(임진 왜란). 다시 만주의 오랑캐가 쳐들어오자(3960), 드디어 이에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병자 호란). 그래도 당파 싸움은 계속되어 영조, 정조는 이를 막으려고 애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런데다가 임금이 어린 틈을 타서, 약 60년간(4134년부터)이나 세도 정치가 계속되어, 반대파를 죽이고, 다시 천주교도까지 죽여서, 프랑스의 항의를 받았으나, 정권을 잡은 대원군은 이를 물리치고, 외국을 배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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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조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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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우리보다 빨리 개화한 일본은, 우리 나라를 노리다가 강제로 수호 조약을 맺고(4209), 우리 나라에 간섭하자, 다른 나라도 또한 간섭하게 되어, 다시 어지러워졌다.

단기 4227년에 일어난 동학란으로, 청일 전쟁이 일어나서, 일본이 이기고, 다음에는 러시아와 엉켜서 다투다가 드디어 노⋅일 전쟁이 일어났다(4237). 다시 일본이 이기자, 4238년에는 강제로 조선과 보호 조약을 맺게 하더니, 4243년에는 아주 조선을 삼켜 버려서, 우리의 독립은 일본에게 짓밟혀서 나라 없는 슬픔을 겪게 되었다.

조선은 건국 이래 주자학을 받들고 불교를 배척하였으므로, 많은 미술품이 파괴되고, 이론을 밝히는 학문만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종 대왕께서 민족을 자랑하시는 정성으로, 단기 3779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셨으니, 이로부터 국문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당쟁에 내몰린 학자들은, 역사, 지리를 비롯하여, 발달된 서양의 학술을 연구하게 되었고, 정약용 같은 학자들은, 천주교를 넓히는 운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운동에 자극을 받은 최제우는, 동학 운동을 일으켜서 천도교를 창설하였다.

조선은 처음에 전국을 8도로 나누어서 다스렸으나, 외국 문화와 사상이 들어와서, 국호를 대한 제국이라고 고치던 26대 고종 때부터는, 13도로 나누어서 다스리게 되었다.

청일 전쟁 이후, 비로소 남녀 학교가 세워졌지만, 기독교 교회에서는, 그 전부터 사립 학교를 세웠다. 이 때를 전후하여, 철도, 전신, 의료법 같은 서양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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