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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족의 자각 운동

정치적 자각 운동

외세의 농락,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객, 정치 사회의 불안정이라는 현상 가운데, 기울어 가는 국가를 부지하려는 일부 선각자들의 구국 운동은 민족의 정치적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독립 협회가 보수 정부의 탄압으로 해산당한 후에도 많은 정치 단체가 조직되어, 외세 침투에 맹렬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민족 자강과 정치 계몽에 힘썼다.

보안회, 헌정 연구회, 대한 자강회 등의 활동이 컸으며, 특히, 안창호의 신민회와 청년 학우회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교육, 문화 전반에 걸친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증가 일로의 차관이 자주 독립을 위협하는 것이라 하여, 국민의 절주 금연에 의한 국채 보상을 목적한 국채 보상회가 1907년 대구에서 조직되었다.1) 전 국민의 호응 가운데 전개되었으나, 매국 단체인 일진회의 방해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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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도산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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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활동의 성장

근대적인 민족적 자각은 전변하는 국내외 정세의 변동에 자극되는 바 컸다. 보도 기관은 신속하게 새 소식을 전달하는 동시에, 민심, 여론을 창도하는 길잡이 구실을 하였다. 1883년 박문국에서 발간된 한성 순보가 최초의 신문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순간으로 된 관보였으며, 최초의 일간 신문이며 민간인이 발간한 신문은 1896년에 창간한 독립 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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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순보
한성 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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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신문이 민권의 대변자로 자주와 민권을 창도하다 폐간된 후에는 1898년에 발간된 황성 신문과 제국 신문이 활약하였는데, 특히 전자는 장지연 등의 과감한 필봉으로 반항의 선봉에 섰다. 1905년에 발간된 대한 매일 신보는 영국인 베델(Bethell)과 양기탁을 중심으로 하여 한글과 영문으로 발간하였는데, 통감 정치하에서도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민족 진영의 인사들이 발간한 만세보, 대한 민보도 국민 자각에 기여하는 바 컸다.

교육 운동

교육 활동을 통하여 민족적 자각의 앙양을 기할 수 있으며, 교육을 통한 민족의 자강에 의해서 국운을 건질 수 있다 하여, 국민 계몽, 학교 설립, 교육 보급에 헌신하는 선각적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나라 근대 학교의 시초는 1886년 정부가 설립한 육영 공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특수층을 위한 교육 기관이었는 데 대하여, 개국 후 이 땅에 건너와 사랑과 평등의 이념을 펴 오던 크리스트 교 선교사들은 만인이 교육받을 수 있는 사립 학교를 창립하였으니, 그 시초는 1885년의 배재 학당과 다음 해의 이화 학당이었다. 외세에 대한 민족적 자각과 선교 단체에 의한 근대 학교 설립에 영향을 받아, 민족 의식의 앙양과 국민 계몽을 목적으로 한 사립 학교가 민족 진영 인사들에 의하여 속속 전국 각지에 설립되었으며, 을사조약 후에는 더 많은 사립 학교가 세워졌다. 보성, 양정, 오산 학교나 진명, 숙명 여학교 등이 그 대표적인 예로, 많은 인재를 길러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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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시절의 이화 학당
창립 시절의 이화 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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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보급과 국학 연구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국문 보급에 큰 공헌을 한 것은 크리스트 교였다. 카톨릭 교에서는 1862년경부터 한글 교리서를 폈으며, 프랑스 선교사들은 우리 나라 최초의 외국어 사전인 나한 사전, 한불 자전을 편찬하였고, 한어 문전이라는 한글 문법서를 편찬하였다. 한편, 프로테스탄트도 성서와 찬송가를 국문으로 편찬하여 종교 활동을 통한 한글 반포의 금자탑을 이루었다. 국문의 보급에 따라 신문 보급률도 늘어났으며, 소년, 조양, 가정, 야뢰 등 월간 잡지가 발간 보급되었다. 한편, 한글의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유길준, 주시경 등에 의하여 대한 문전, 국어 문전 음학 등의 문법서가 저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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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표지
‘소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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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의 연구와 함께 민족의 전통과 민족의 독립을 찾고자 하는 학문적 노력으로 국사의 연구가 있었다.

장지연, 신채호 등은 우리 역사 연구의 선구자였다.

신문학 운동의 전개

근대 문명의 도입, 개화 운동의 촉진, 국문의 보급과 외세 침투의 영향으로 언문 일치, 자주 정신, 자유 평등, 개화 찬양, 봉건 타파 등 새 시대의 감각을 창작면에 살리고자 하는 신문학 운동이 일어났다.

신문학 운동의 선구자는 이인직이다. 그는 1906년경부터 혈의 누, 귀의 성 등의 작품을 통하여 개화 사상, 사회적 자각을 내세웠고, 이어 이해조, 최찬식 등이 나왔으며, 구연학, 김교제, 육정수, 이상협 등도 신문학 작품을 남겼다.2) 이인직의 대표작 : 혈의 누, 귀의 성 외에 치악산, 은세계. 이해조의 대표작 : 자유종, 춘외춘, 빈상설, 옥중화. 최찬식의 대표작 : 안의 성, 추월색, 금강문, 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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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 성 표지
귀의 성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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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학의 새 기운에 호응하여 시문학에 있어서도 새 경향이 일어났다. 최남선이 자유시의 선구자로 활약하게 된 후 자유로운 정서의 표현 활동이 활발해졌다.

근대 문화의 도입에 따라 서양 음악이 전해져 애국가, 한양가, 독립가 등 창가가 나와 청소년에게 즐거이 불려졌다. 또, 민족 의식을 반영한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최익현전 등 침략과 싸운 인물의 전기 문학을 비롯하여 번역 문학도 크게 일어났다.

종교 생활의 근대화

1784년 이래 100여 년 간 꾸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자라 나온 카톨릭 교는, 개국 이후 포교 활동의 자유를 얻어 큰 발전을 보였고, 프로테스탄트의 각 파도 선교사들에 의하여 도입되었다. 크리스트 교는 종교적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사회 사업을 전개하여 근대 문명의 소개, 민족의 계몽, 사회 생활 개선에 공헌한 바 컸다.

외래의 크리스트 교뿐만 아니라 민족적 전통을 지닌 동학이 손병희의 노력으로 천도교로 개편된 후 사회 각층으로 그 교세를 폈다. 동학과는 달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대종교가 1909년 이후 유포되어 외세 배격, 민족 자주 운동을 펴게 되었다.

종교 활동을 통한 지식 보급, 한글 홍포, 새 문화의 계몽, 봉건 폐습의 타파, 평등⋅자유 사상의 유포 등은 우리 역사상 커다란 의의를 지닌 일들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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