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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국 시대의 종교와 사상

삼국 시대의 원시 종교

삼국 시대에 들어와서도, 민간에서는 천신, 일월신, 산신, 해신 등을 비롯한 여러 잡신을 모시는 샤아머니즘이나 점술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사회는 이미 씨족 공동체 안에 폐쇄된 것이 아니라, 초부족적인 상태로 변하였으므로, 씨족 사회 당시에 성립되었던 원시 종교로써는 새로운 사회 생활을 지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등 종교인 불교가 이에 대신하여 큰 세력을 얻게 되었다.

고대 정신과 불교

불교는 삼국의 고대 국가 체제가 정비될 무렵에 전래하여 이해되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372), 백제는 침류왕 때(384) 공인되었고, 신라는 법흥왕 때(527)에 이르러 이차돈이 순교한 뒤부터 공인되었다.

당시의 불교는 종교로서의 구실만 한 것이 아니라, 서역과 중국의 문화를 우리 나라에 전달하는 구실도 하였다. 그리하여, 재래의 각 부족들의 전통 문화보다 넓은 문화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하여, 한국 고대 문화를 성립시키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갈등이나 모순을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깨닫게 하여, 우리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철학을 알게 하였다.

고구려 불교는 주로 대승 불교인 삼론종이 크게 발전하였고, 백제 불교는 주로 율종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는데, 겸익은 성왕 때 인도에서 율종 관계의 불경을 가지고 돌아와서 번역까지 하였다.

나아가,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해 주었으며(552), 많은 승려를 보내 일본 불교의 기초를 닦아 주었다.

신라 초기 불교는 왕실과 결합해서 여러 왕이 불교식 이름1) 진평왕은 석가의 부친 이름인 백정을 따다가 자기 이름으로 삼고, 왕비는 석가의 모친 이름을 따서 마야 부인이라 하여, 하나의 불교 왕국을 건설하려 하였다.을 가지기까지 하였다. 진흥왕 때에는 고구려 승려 혜량을 맞아 국통으로 삼고, 그 아래 주통, 군통을 두어 교단을 조직하였다. 그 뒤, 진평왕 때의 원광법사는 불교를 선교했을 뿐만 아니라, 세속 5계를 정하여 가르치는 등 새로운 사회 윤리와 국가 정신을 확립하기에 힘썼다.

한편, 도교도 고구려와 백제의 귀족 사회에 전래되어 있었는데, 고구려 보장왕 때 연개소문은 불교 세력을 누르고자 도교를 장려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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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산수문전
백제의 산수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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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의 발달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문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삼국 시대에는 우수한 문화를 배경으로 한 중국의 한자와 그 문학이 이미 들어와 있었으므로, 대부분 한자를 썼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삼국 시대의 지명이나 향가 등을 보면, 한자의 뜻과 음을 따서 만든 이두로써 우리말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식의 기록은 삼국 시대에 널리 행해졌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한자를 사용하였고, 중국식 태학까지 세워(372) 한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지식층에서는 5경, 3사, 삼국지, 문선 등이 읽혀졌다. 또, 사립 학교인 경당을 세워 일반 민간에서도 한학을 가르쳤다. 당시의 한문을 대표하는 것은 통구에 있는 광개토왕비의 비문이다.

백제에서도 일찍부터 한학이 발달하여, 오경 박사와 의⋅역 등의 박사가 있었으며, 한학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백제의 한문으로서는 개로왕 때 북위에 보낸 국서가 위서에 실려 있으며, 사택 지적비에는 노장 사상이 세련된 문장으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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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택 지적비
사택 지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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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한문으로 주목되는 것은 진흥왕 순수비의 비문인데, 그 내용은 진흥왕의 업적을 찬양한 것이다. 진평왕 이후부터는 신라에서도 유학이 널리 연구되었다.

이와 같이, 삼국 시대에 들어와서는 유학의 연구를 비롯하여 역학, 의학 등 고대 과학 연구가 활발하였고, 공예, 건축 등 기술 부문에서도 상당한 발달을 보였다. 건축에는 기하학 원리를 응용하고 역학에는 수학을 응용하였다.

국사의 편찬

서사시로 구전되어 오던 각 부족의 역사는, 한학이 발달함에 따라 문자로 기록되었다. 고구려에서는 일찍부터 역사가 편찬되어 이미 유기가 있었는데, 이것을 영양왕 때 태학 박사 이문진이 간추려 신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제에서는 근초고왕 때에 박사 고흥이 서기를 편찬하였고, 신라에서는 진흥왕 때에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역사의 편찬이 백제의 근초고왕 때나 신라의 진흥왕 때와 같이 국력이 크게 번성하던 시기에 이루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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