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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통일 신라의 예술

(2) 통일 신라의 예술

통일기 예술의 특징

신라 중대의 예술은 주로 조형 미술이 중심이었고, 그것도 대부분 종교 생활에서 나온 불교 미술이나 사후 세계를 위한 고분의 영조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통일 신라 때처럼 종교적인 정열을 미술에 쏟은 때는 다시 없었다. 이 시기의 미술품은 모두가 조화미, 정제미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통일기 예술은 주로 귀족 문화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문무왕 때에 궁성 안에 파서 만든 연못인 안압지1) 건물이 세워졌던 남쪽과 서쪽의 둑은 직선으로 되어 있으나, 북쪽은 굴곡을 가지게 하여 시각적으로 원근감을 주고,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둘려서 조화된 자연미를 이루고 있었다. 안압지 조사시에 못 안에서 통나무배와 14면체 주사위, 금동제 가위, 금동제 불상 등의 유물이 나왔는데, 이것으로 화려했던 당시의 궁중 생활, 귀족 생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는 못의 둑 전체를 돌로 견고하게 쌓아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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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출토 목선
안압지 출토 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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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과 불국사

석굴암은 그 안에 본존상을 중심으로 관음보살상, 제자상, 인왕상 등을 배치하여 불교 세계의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 치밀한 구성을 밑받침으로 한 정제미는 당시 신라의 건축 기술이나 고대 과학의 발달 수준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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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실측도
석굴암 실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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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는 토함산을 배경으로 하고 넓게 트인 앞을 내다보고 서 있는데, 목조 건물은 임진왜란 때에 타 버리고 지금 남아 있는 신라의 것은 석조물과 기단뿐이다. 현재의 불국사 건물은 조선 시대의 건축이고, 그 일부는 근년에 세워진 것이다.

불국사 앞에 있는 청운교, 백운교 등의 돌층계와 범영루의 다락 등은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3층 석탑(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데, 그 세련된 아름다움은 최고의 수준에 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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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가람 배치도
불국사 가람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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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3층 석탑 안에서 발견된 다라니경은 8세기 중엽 이전에 인쇄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판 인쇄물이다.

범종과 기타의 유물

신라 시대의 걸작품으로 들 수 있는 성덕 대왕 신종은 조각이 웅대, 화려하면서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종으로서는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무열왕릉비의 이수와 귀부의 조각, 성덕 대왕릉의 호석들의 조각 등은 사실적인 미를 나타내고 있고, 불국사의 석등,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도 박력 있고 균형이 잘 잡힌 조각으로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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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열왕릉비의 이수와 귀부
무열왕릉비의 이수와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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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통일기에 와서는 높은 기단 위에 3층 석탑을 세우고 대담하게 각 층의 폭과 높이를 줄이면서 쌓아올려 독특한 입체미를 나타내는 양식이 유행하였다. 이와 같이, 새로운 석탑 양식이 신라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통일기에 와서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 방법이 생겨나고, 고분 양식도 적석 목곽분에서 횡혈식 석실 고분으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무덤의 봉토 주위를 호석으로 두르고, 그 호석에 12간지 신상을 조각하는 새로운 양식이 성립하였는데, 이 12간지 신상의 조각은 뒤에 고려, 조선 왕조의 왕릉에까지 계승되어 나타났다.

한편, 서도에서는 김생, 요극일 등이 명필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김생은 유명하여 고려 시대에 그의 글씨를 모아서 새긴 집자 비문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또, 그림에 있어서는 신라 하대 초기의 화가 김충의가 당에 가서 이름을 날렸다. 하대에 와서는 일반 불화뿐만 아니라 귀족이나 승려들의 초상화도 그려졌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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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의 글씨
김생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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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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