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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쟁과 그 뒤

카페 왕조가 끊어지고 발르와 왕조가 그 뒤를 잇고 나서, 영국과의 사이에 백년 전쟁(1339~1453)이 일어났다. 전세는 처음 프랑스에 불리하여 15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국토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듯하였으나, 그 때 농민의 딸 쟌다르크가 신탁을 받았다고 하여 나타나서 사기를 앙양시킨 결과 전세가 역전되어, 영국군은 칼레 시 만을 제외한 그 밖의 지역에서 모조리 쫓겨나고 말았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프랑스는 영국이 차지하고 있던 영지를 거의 모두 회복하였으므로, 이로써 양국은 영토가 정리된데다가 민족 의식이 앙양되어 민족 국가의 터가 확고하게 잡히게 되었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전쟁터가 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흑사병, 농민 반란 및 내분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국왕들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상비군을 만들고, 이를 위한 세제를 마련함으로써 시민 계급의 지지와 아울러 강력한 군주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편, 영국에서는 백년 전쟁 후 왕위 계승 문제로 장미 전쟁(1455~1485)이 일어났다. 이 내란에서 거의 모든 제후가 랭카스터와 요오크의 두 왕가를 중심으로 갈라져서 싸운 결과 대부분이 단절되거나 몰락한 자가 많았다. 내란의 종결과 더불어 왕위에 올라 튜더 왕조를 시작한 헨리 7세(1485~1509)는, 귀족 세력의 약화와 오랜 혼란에 지친 국민의 여망을 딛고 강력한 중앙 징권 체제를 수립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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