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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대의 사회와 경제

위⋅진⋅남북조 시대는 사회적 변화가 심한 시기였다. 위에서는 중정이라는 직을 두어 널리 훌륭한 인재를 뽑아 9품으로 나누어 관리로 추천, 임명하게 하는 이른바 9품 중정법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남북조 시대까지 시행되었다. 그러나, 문벌에 관계 없이 인재를 널리 등용하기 위하여 실시된 이 제도는, 오히려 지방 호족들의 관직 독점으로 인하여 본래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유능한 사람도 그 가문이 좋지 않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사회였다.

한편, 당시의 유교가 자구의 해석에만 치중하여 실천 도덕으로서의 권위가 떨어지고 새로이 노장 사상이 다시 일어나게 되어, 일체의 세속적인 일을 피하고 개인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른바 죽림칠현으로 알려진 청담의 풍조는 관계에 뜻을 두어도 이룰 수 없었던 지식층의 염세적인 생활 태도와 노장 사상이 유행하였던 위⋅진 시대의 세태를 말하여 주는 것이다.

남조에 있어서는 가문의 내력과 혈통을 자랑하는 귀족들이 정치적 권세를 누렸으며,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는 무시되는 형편이었다. 명문 거족을 중시하는 풍조는 북조에서도 유행하여 족보를 연구하는 보학이 크게 발달하여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편, 거듭되는 혼란을 통하여 농민들은 땅을 잃은 자가 많았고, 그 반면 지방 호족들의 대토지 소유는 늘어 갔다. 이러한 폐단을 시정하려고 서진은 점전법을 실시하였고, 또한 후위의 효문제는 균전제를 실시하였다. 균전제는 농민의 토지 확보와 호족의 대토지 소유를 막으려고 실시된 제도이나,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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