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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전쟁

종교 전쟁

종교 개혁을 계기로 중세의 크리스트 교 세계의 통일이 깨지고 새로이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는 신교파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자, 그들과 카톨릭 사이에 약 1세기에 걸친 치열한 종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종교 전쟁은 물론 종교적 대립에서 발생하였으나, 배후에는 정치적 갈등이나 경제적 대립이 숨어 있었다.

에스파니아의 필리페 2세는 열렬한 카톨릭의 옹호자로서, 그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영토 내에 카톨릭을 강요하였다. 이에, 에스파니아의 영토였던 네덜란드의 신교도가 반란을 일으켰다(1568). 남부(지금의 벨기에)는 도중에 이탈하였으나, 북부 7주는 저항을 계속한 끝에 1581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네덜란드 공화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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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페 2세
필리페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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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왕위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이 종교적 대립과 결합하여 위그노 전쟁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이 일어났다(1562). 전쟁 말기에 왕위에 올라 부르봉 왕실을 열게 된 앙리 4세는 원래 신교도의 지도자였으나, 왕위에 오르자 카톨릭으로 개종한 뒤 ‘낭트 칙령’(1598)으로 신교도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내란을 종식시켰다.

종교 전쟁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독일에서 일어난 30년 전쟁(1 618~1648)이었다. 처음 보히미아의 신교도의 반란에서 시작된 분쟁이 뒤에는 스웨덴, 덴마아크, 프랑스 등이 참가하여 국제 전쟁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장기간에 걸쳐 전쟁터가 된 독일이 받은 피해는 막심하여, 독일은 경제적으로 뒤떨어지게 되고, 정치적 분열도 오히려 강화되었다.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은 독일에서 루터 파 이외에 캘빈 파를 새로이 인정하고,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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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의 유럽
1648년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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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격심한 종교 전쟁을 거친 뒤 비로소 유럽은 다른 교파에 대한 종교적 관용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종교적 요인은 차차 그 힘이 약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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