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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전제 정치

19세기 전반기의 러시아는 유럽의 강대국 중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가장 뒤떨어진 농노제와 전제 정치의 나라였다. 특히, 니콜라이 1세는 1825년 즉위 하던 때에 데카브리스트(12월당)의 반란을 겪고 극단적인 반동적 전제 군주가 되었으며, 말년에 흑해 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투르크와 크림 전쟁(853~1856)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알렉산드르 2세는 크림 전쟁의 실패를 교훈삼아 내정 개혁에 착수하여 1861년 농노 해방을 단행하고, 1864년에는 지방 의회를 설치하였다. 농노 해방은 중요한 개혁임에 틀림없었으나, 큰 실효는 거두지 못하였다. 즉, 농노는 신분상으로 해방되었을 뿐이고, 촌락에 소속되어 이동의 자유가 없고 경제적으로도 큰 혜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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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2세
알렉산드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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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알렉산드르 2세는 1877년 불가리아인의 학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투르크 전쟁을 일으켜 산 스테파노 조약(1878)에서 투르크로 하여금 세르비아, 몬테니그로, 루마니아의 독립과 불가리아의 자치를 승인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조약은 영국과 오스트리아의 항의를 받음으로써 비스마르크의 베를린 회의(1878)를 통한 중재를 거쳐 부분적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와 헤르쩨고비나를 관리하게 됨으로써 아드리아 해로의 진출이 막힌 세르비아는 큰 불만을 품게 되었다.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 기운과 더불어 폭력이나 암살 등 과격한 수단으로 기존 질서를 파괴하려는 허무주의 내지 무정부주의가 대두하여, 알렉산드르 2세는 보다 철저한 개혁을 실시하려던 때에 그들에 의하여 암살되었다(1881). 그 결과, 알렉산드르 3세는 전제 정치를 더욱 강화하게 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산업 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함으로써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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