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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 시대의 동 아시아

원 말, 명 초의 중국 남동 해안에서는 왜구로 인한 피해가 컸다. 이 왜구는 일본 남북조 시대의 소란기 이후부터 시작하여, 중국의 해안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해안에까지도 출몰하여 노략질을 자행하였다. 영락제는 일본에게 왜구의 진압을 요구하는 한편, 감합 무역을 종용하여 한때 왜구의 피해가 줄어든 듯했지만, 일본에서 전국 시대의 혼란이 시작되자 다시 그들의 횡포가 심해졌다.

그 뒤, 일본에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 시대를 통일하고, 그 여세를 몰아서 2차에 걸쳐 조선을 침략하였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조선 민중들의 끈질긴 항쟁과 명의 원병에 의하여 격퇴되었다. 명은 조선 원병에 의한 막대한 군사비의 지출로 결과적으로, 명 쇠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명과 조선은 양국의 건국 당초부터 우의를 맺어 조공 관계가 지속되었고, 명의 원병이 있은 뒤는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되어서 후금이 만주를 석권하였을 때, 조선은 명과 연합 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한편 해상에서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상인들이 차례로 해상권을 장악하여, 중국과 일본에 접촉하였다. 1624년에는 네덜란드가 타이완의 일부를 점령하여 아시아 진출의 거점으로 삼기도 하였다. 이들 유럽의 상인들은 공적인 무역 이외에도 중국 동해안의 도서에서 밀무역을 하여 동 아시아의 경제 질서를 교란시켰다. 명나라는 이와 같은 사정에서 쇄국 정책을 오랫동안 지속하게 되었다.

청나라는 명과 같은 한족만의 국가가 아니라, 한족, 만주족, 몽고족, 위구르 족, 티벳 족 등의 다섯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 영역을 통치하는 한편, 그 주변 국가들을 힘으로 복속시켰다. 조선도 명과의 우의적인 관계와는 반대로 청의 무력에 의하여 정복당하였다. 일본은 청의 중국 통치가 시작될 무렵부터 쇄국 정책을 써서 청과의 직접적인 교섭은 없었으나, 상인을 간의 간접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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