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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의 긴장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통일을 달성한 뒤에는 마찰과 분쟁을 피하는 뜻에서 현상 유지와 프랑스의 고립을 외교 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하여 그는 오스트리아 및 러시아와 삼제 동맹을 맺었다(1872). 그러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발칸 방면에서 이해 관계가 대립하게 되어 동맹의 효과가 별로 없게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때마침 튀니지 문제로 이탈리아가 프랑스에 불만을 가지게 된 것을 보고, 이를 끌어들여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삼국 동맹을 맺었다(1882).

1890년에 비스마르크가 물러나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제국주의적인 식민지 획득과 세력 확대, 그러고 범 게르만주의를 표방하는 이른바 세계 정책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국제 관계를 긴장시키게 되었다. 특히 베를린, 비잔티움, 바그다드를 연결하는 철도 부설권을 투르크로부터 얻어 이른바 3B 정책을 추진시키게 되자, 서남 아시아 방면에 깊은 이해 관계를 가진 영국과 러시아를 자극하게 되어 영국은 프랑스와 협상을 맺었다(1904).

이보다 앞서, 러시아는 프랑스와 협상을 맺고 있었으나(1894), 영국과 러시아는 인도 방면에서의 이해 관계의 대립으로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자, 영국은 영⋅일 조약을 폐기하고 러시아에 접근하게 되어 1907년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 협상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유럽의 주요 국가가 삼국 동맹과 삼국 협상으로 서로 맞서게 되어, 국제 관계는 점점 더 긴장하게 되었다. 더구나, 독일의 세계 정책은 보다 강력하게 추진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비 확장, 특히 대해군 건설의 움직임은 영국을 자극하게 되어 군비 확장 경쟁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 관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하여 1899년과 1907년에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만국 평화 회의가 열렸으나,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실효성 없는 국제 법정을 설치하는 데 그쳤다. 그리하여, 제국주의와 좁은 민족주의, 그리고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한 삼국 동맹과 삼국 협상의 대립은 마침내 유럽을 세계 대전으로 몰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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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독의 건함 경쟁을 풍자한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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