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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

(1)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

러⋅일 간의 각축

3국 간섭 이후 친러파는 을미사변의 뒤처리와 의병 활동으로 국내가 어수선한 틈을 타서 러시아 수병을 데려다 공사관을 호위하게 하였고, 고종 황제는 궁궐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갔다(아관 파천, 1896). 그리하여, 윤용선을 총리로 하는 이범진, 이완용 등의 친러 내각이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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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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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에 몰린 일본은 러시아와 세력 균형을 위한 협상을 벌였다. 그 결과, 서울에 주재한 양국 공사 사이에 각서가 조인되었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하여 아관 파천과 친러 내각의 구성을 묵인함으로써 조선에서의 러시아 세력의 우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서울-부산 간의 일본의 전신선 보호와 일본 거류민 보호의 명목으로 군대를 계속 주둔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러시아의 야망은 조선뿐만 아니라 만주에 세력을 팽창시키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조선, 청, 일본의 공동의 적이었다. 그러나, 형세는 바뀌어 이제 러시아는 조선, 청으로 하여금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대하고, 이를 함께 방어 할 것을 제의하여 세력을 확대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러시아는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초청한 조선, 청, 일본 대표와 각기 내용이 다른 비밀 협약을 체결하였다. 청과는 만주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공수 동맹을 맺어, 시베리아 철도가 만주를 횡단할 수 있도록 동청(東淸) 철도 부설권을 얻었다.

일본과는 일본이 조선에 점유하고 있는 전신선을 계속 관리하는 대신, 러시아는 서울에서 조⋅러 국경에 이르는 전신선 가설권을 가지고, 장차 러⋅일 양국이 조선에 군대를 증파할 경우, 서로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양국 주둔군 사이에 완충 지대를 둘 것을 약속하였다.

또, 조선과는 조선의 친위병 편성을 도울 러시아 인 군사 교관과 재정 문제를 도와 줄 러시아 인 재정 고문을 파견하고, 러시아의 육상 전신선과 조선의 전신선과의 연락을 승인하는 등의 내용으로 협약을 맺었다.

열강의 잇권 침탈

아관 파천 후 황제는 주권 행사를 제대로 못하고 러시아의 간섭과 압력을 받는 가운데 황제 주변의 부패 관리들을 통해 각종 잇권이 열강의 손에 넘어갔다.

조선과 만주에서 우세한 지위를 차지한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은 조선으로부터 각종 잇권을 침탈하였다. 러시아 인 군사 교관은 군사권을 장악했으며, 탁지부의 재정 고문으로 파견된 알렉세예프(Alexeiev)는 재정권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서울에 조⋅러 은행을 설립하여 조선의 경제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그리고, 경원, 종성의 광산 채굴권과 압록강 유역 및 울릉도의 삼림 채벌권 등이 러시아의 차지가 되었다.

미국은 평안도 운산 금광 채굴권과 경인 철도 부설권 및 서울의 전기⋅수도 시설권을, 프랑스는 경의 철도 부설권을, 독일은 강원도 금성의 당현 금광 채굴권을, 영국은 평안도 은산 금광 채굴권을 각각 차지하였다.

그 중에서 경인 철도 부설권은 원래 일본이 차지하려던 것을 미국인에게 주었으나, 결국 일본인에게 상당한 권리금을 받고 팔아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부국 자강의 원천이 되는 광산, 삼림, 철도 등의 각종 잇권이 열강의 손으로 넘어가자,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비난이 크게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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