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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사 문화의 전개
  • (3) 신석기 문화

(3) 신석기 문화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는 B.C. 6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돌을 떼어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돌을 갈아서 여러 가지의 형태와 용도를 가진 간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래서 부러지거나 무디어진 도구도 다시 갈아 손쉽게 쓸 수 있게 되었으며, 단단한 돌이나 무른 석질의 돌을 모두 이용하게 되었다. 또, 진흙을 빚어 불에 구워서 만든 토기를 사용함으로써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저장할 수 있게 되어, 생활이 좀더 나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간석기와 토기는 신석기 시대를 특징짓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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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의 간석기
여러 종류의 간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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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이다. 그런데 함북 웅기 굴포리,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등에서는 빗살무늬 토기보다 앞서는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등이 나오고 있다. 빗살무늬 토기의 유적은 전국 각지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평남 온천 궁산리, 황해도 봉산 지탑리, 서울 암사동, 경기도 하남 미사동, 부산 동삼동, 강원도 양양 오산리 등으로, 모두 강가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빗살무늬 토기는 도토리나 달걀 모양의 뾰족 밑 또는 둥근 밑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기도 다양하다. 토기의 사용은, 농경으로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하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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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민무늬 토기(강원도 양양 오산리 출토)
이른 민무늬 토기(강원도 양양 오산리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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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 토기(서울 강동구 암사동 출토)
빗살무늬 토기(서울 강동구 암사동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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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의 생활

신석기 시대부터 농경 생활이 시작되었다. 봉산 지탑리에서는 탄화된 피가 발견되고 평양의 남경 유적에서는 탄화된 조가 발견되어, 피나 조와 같은 잡곡류가 이미 신석기 시대에 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이용된 주요 농기구로는 돌괭이, 돌삽, 돌보습 등이 있다.

농경 기술이 발달하면서 짐승 사냥과 물고기잡이가 경제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식량의 큰 몫을 차지하였다. 사냥은 주로 활이나 창을 이용하여 사슴, 노루 등을 잡았고, 물고기잡이에는 여러 가지 크기의 그물과 작살, 뼈로 만든 낚시 등을 이용하였다. 때로는 통나무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나 바다 짐승을 잡기도 하였다. 또, 굴, 대합 등의 조개류도 채취하여 식용으로 하였다.

농경 도구나 토기의 제작 외에 원시적 수공업 생산도 이루어졌다. 가락바퀴나 뼈바늘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의복이나 그물도 만들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모의 발달과 농경의 시작으로 주거 생활도 개선되어 움집이 일반화되었다. 집자리의 바닥은 원형이나 모가 둥근 방형인데, 중앙에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위치하고 있다.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으로 출입문을 냈으며,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는 저장 구덩을 만들어 식량이나 도구들을 저장하였다. 그 규모는 대개 성인 4명 정도가 살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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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의 움집터(서울 강동구 암사동)
신석기 시대의 움집터(서울 강동구 암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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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에는 부족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부족은 혈연을 바탕으로 한 씨족을 기본 구성 단위로 하였다. 이들 씨족은 각각 폐쇄적인 독립 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며, 점차 다른 씨족과의 족외혼을 통하여 부족을 이루었다. 그러나 부족 사회 역시 아직 지배, 피지배의 관계가 발생하지 않은 평등 사회였다.

농경과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농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해, 구름, 비, 천둥, 우박과 같은 자연 현상, 산이나 하천 같은 자연물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 태양과 물에 대한 숭배가 으뜸이 되었다. 또,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영혼 숭배와 조상 숭배가 나타났고, 인간과 영혼 또는 하늘을 연결시켜 주는 존재인 무당과 그 주술을 믿는 샤머니즘을 널리 믿었다. 그리고 자기 부족의 기원을 특정 동식물과 연결시켜 그것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이 있었다.

이 시대의 예술품으로는 주로 흙으로 빚어 구운 얼굴 모습이나, 조개껍데기 가면, 동물의 모양을 새긴 조각물, 짐승뼈나 이빨로 만든 장신구 등이 출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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