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활동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제정, 공포된 교육법에는, 교육의 근본 이념을 홍익 인간으로 규정하였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 인간의 정신은, 우리 나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리 민족이 간직하여 이어 내려온 민족 정신이었으며, 우리 나라의 건국 이념이기도 하였다. 또, 이 정신은 인류 공영이란 민주주의 기본 정신과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광복 후 추진된 민족 교육 기반 확립의 노력은 6⋅25 전쟁이란 돌발적 사태에 의하여 흔들리게 되었다. 전란 중 교육의 중점 목표는 멸공 필승의 신념과 집단 안보 의식의 고취에 두어졌고, 교육의 방침으로 도의 교육, 1인 1기 교육, 국방 교육이 강조되었다. 서울로 환도한 이후, 정부는 전시하에 파괴되었던 학교 시설을 복구하는 한편, 교육 과정을 개편하는 등 교육의 정상화를 꾀하였다.
4⋅19 의거를 계기로, 교육의 중립성 확보, 사도의 확립, 학원 정상화 등 교육의 민주화를 위하여 정책 방향이 설정되었으나, 5⋅16 군사 혁명을 계기로 교육계는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겪어야 했다.
군사 정부는 국정 지표를 조국 근대화에 두고, 교육면에서는 인간 개조 운동을, 사회 교육면에서는 재건 국민 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여 나갔다. 뿐만 아니라, 교육 관계 특례법을 제정하여 교육 자치제를 폐지함으로써 교육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제3공화국 시대에 들어와서 교육 자치제가 부활되었으나, 교육의 중앙 집권화와 관료적 통제는 없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국민 교육 헌장이 선포되고, 중학교의 무시험 진학제가 실시되었으며, 대학 입학 예비 고사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각종의 교육 시설이 확충되었고,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교육 인구가 크게 증대되었다.
이어서, 유신 체제하에서 정부는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새마을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사회 교육의 확대 방안으로 방송 통신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교육 연구를 목적으로 한 한국 교육 개발원과 정신 교육을 위한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이 발족되기도 하였다.
학술 활동
일제의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우리 학계가 받은 해독은 엄청나게 컸다. 따라서, 광복 이후 학계에 부여된 과제는 식민 사관의 청산과 전통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광복 이후의 학술 연구 활동을 시기별로 나누어 보면, 광복에서 1950년대까지의 시기는 초보적 단계로서, 일제에 의하여 왜곡된 국사학, 국어학, 국문학 등 전통 문화의 기반을 새로이 마련하는 시기였다. 6⋅25 전쟁으로 학술 연구가 일시 중단되었으나, 휴전 이후 학술 연구는 많은 학회와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성화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오자 한국학 연구가 고조되어, 이에 관계된 많은 학술 연구 단체가 결성되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학문 분야가 개척되었다.
1970년대 이후, 광복 이후 전개된 연구 활동의 성과가 점차 정리되어 갔으며, 새로운 연구 방법론의 도입, 연구 범위의 확대, 연구 방향의 모색 등이 시도되었다. 또, 국사 편찬 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한 국사의 연구와 편찬 활동이 활발해져, 전통 문화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커다란 업적이 이루어졌다.
한편, 과학 분야의 학술 활동에서도 두드러진 업적이 이루어졌다. 대학을 비롯하여, 고등 교육 기관의 보급과 해외 유학생의 증가로 많은 인재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한국 과학 기술원 등 각종 연구 기관이 설립되고, 또 정부의 과학 기술 발전 정책의 추진으로 첨단 과학 분야에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