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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종교와 민간 신앙

불교

조선 시대의 불교는 유교 이념을 내세운 국가에 의해 간섭과 통제를 받아 그 활동이 제약되었다.

조선 왕조는 불교에 대한 정비책으로 도첩제를 실시하였고,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통합하였으며, 사원의 건립을 억제하였다. 그리고 불교 윤리 사상을 유교 윤리 사상으로 대체하고, 사원의 토지와 노비를 국가에서 환수하였다.

태조는 도첩제를 실시하여 승려의 수를 제한하고, 사원의 건립을 억제하였다. 태종은 전국에 242개의 사원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폐지하여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였다. 세종은 모든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통합하고, 선⋅교에 각 18사씩 36사만을 본사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불교 신앙은 궁중과 민간에서는 여전히 신봉되고 있었다. 세조 때에는 원각사에 10층 석탑을 세우고, 간경도감을 두어 불경을 번역, 간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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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지 10층 석탑(서울 탑골 공원)
원각사지 10층 석탑(서울 탑골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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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신앙

도교 신앙도 널리 보급되고 있었다. 도교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중요시하였으며, 사대부 사회에 은둔과 신선 사상을 심어 주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시대에 잦았던 도교 행사를 줄여 재정의 낭비를 막으면서도, 소격서를 두어 제천 행사를 주관하게 하였다. 특히,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깃들인 마니산에서의 초제로, 도교 신앙이 민간 신앙과 연결되어 민족 의식을 높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풍수 지리설과 도참 사상이 조선 초기 이래로 중요시되어 한양 천도에 참조되었으며, 양반 사대부의 묘지 선정에서도 작용하여, 심지어 산송(山訟)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도 하였다.

무격 신앙, 산신 사상, 삼신 숭배, 촌락제 등은 서민 사회에 깊이 자리잡았다. 특히, 계절에 따른 세시 풍속은 유교 이념과 융합되면서 조상 숭배 의식과 촌락의 안정을 기원하는 의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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