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경제

고려에서는 나라를 세우고 나서도 급하게 제도의 변경을 서두르지 아니 하더니, 성종 때에 이르러서 모든 테두리를 잡았다.

삼성 육부(三省六部)나 세법, 형법 등은 중국서도 모범이 되는 당 나라의 것을 많이 연구하여 고려에 알맞도록 꾸민 것인데, 원 나라의 간섭이 시작되면서, 모든 관제를 원 나라 식으로 고치게 되었다. 최고 기관을 첨의부(僉議府)라 하고, 육부도 바꾸어 불렀으며, 도병마사(都兵馬使)를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로 고쳐 불렀다.

토지 제도에 있어서도 원칙적으로 토지는 국가의 소유고 자손에게 물려 주지 못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력 있는 귀족들과 사원에 많은 토지가 집중되어 고려가 약해지는 하나의 원인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토지 국유(土地國有)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토지 제도가 흔들리면서 국가 재정이 곤란에 빠지게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숙종 2년(1097) 처음으로 주전관을 두어 해동통보(海東通寶), 동국중보(東國重寶)와 같은 화폐를 만들어 내었고, 4년 후에는 은병(銀甁)을 만들어서 사용하게 하였다, 이 밖에 저화(楮貨-지폐)도 만들어서 화폐 사용을 장려도 하였으나, 상공업이 발달하지 못한 고려 시대에는 역시 곡식과 포목이 물건 교환에 큰 구실을 하여 왔다.

불교, 유교, 학문

고려 시대의 정신 사상을 지도하여 온 불교는, 왕실 귀족들의 귀의(歸依)로써 크게 융성을 보았다. 국가에서 절을 세우고, 귀족의 자제가 다투어 불문에 들어가게 되니, 불교는 그 재산이 늘고 세력이 커감에 따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중심이 되었다.

왕족 출신 대각국사를 비롯하여 보조국사(普照國師), 태고(太古), 나옹(懶翁)화상 같은 이는 불교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으나, 승려의 세력이 커지자, 고려 말기에는 승려에 의하여 정치를 어지럽게 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송 나라에서 일어난 성리학(주자학)은 충렬왕 때 안향(安珦)에 의하여 들어오게 되어, 유학(儒學)이 발달함에 따라 타락된 불교를 배척하자는 운동이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 정몽주, 정도전(鄭道傳) 등에 의하여 일어났다. 이러한 주자학은 기울어져가는 고려 말기에 불교의 부패가 심하여 새로운 정신적 지도를 유교에 의지하였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을 나오게 하였다.

성종 때 서울에 비서성(秘書省)과 서경에 수서원(修書院)을 두어 서적을 간직하고, 한 때 역사책도 꾸몄으나, 지금은 하나도 전하지 아니 한다. 이 시대에 만든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가 가장 오랜 역사책으로 전하여 온다. 문집으로는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이규보(李奎報)의 이상국집(李相國集),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이 유명하여 지금까지 전하여 오고, 평민들 사이에는 향가(鄕歌), 장가(長歌), 시조(時調)가 널리 발달되었다.

예술, 공예, 인쇄술

고려의 문화는 불교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고려의 귀족 정치는 문화까지도 귀족이 점유하게 하여,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고유 문화보다 퇴보된 느낌이 있으며, 말기의 정치적 혼란에서 더욱 고려 문화는 쇠퇴하고 말았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의 예술은 절의 건축, 불상의 조각, 부처의 그림 등에 의하여 발달되었고, 우리 나라 각지에는 아직까지 그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영주(榮州) 부석사(浮石寺)의 건축이나 아미타여래의 목조좌상은 대표적인 것이며, 은진미륵은 크기로 유명하다. 그림으로는 공민왕의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가 있고, 이영(李寧), 이광필(李光弼) 부자가 유명하다.

글씨에 있어서도 당의 구양순, 진(晋)의 왕희지의 필법, 원의 송설체(松雪體)가 유행하여, 탄연(坦然), 최우, 유신(柳伸) 같은 이는 신라의 김생(金生)과 더불어 신품사현(新品四賢)이라고까지 일컬리운 명필이다.

고려 시대의 자랑인 고려 자기(瓷器)는 문종 이후 점점 발달한 고려의 독특한 솜씨로서, 세계적으로 우수한 천재를 나타낸 청자(靑瓷)가 특히 유명하였고, 그 외에 청기와, 유리 그릇 같은 것도 만들었다.

고려 문화의 큰 사업의 하나로서 인쇄술의 발달을 잊을 수는 없다. 고려의 인쇄술도 불교적 신앙에서, 불경을 인쇄하고자 목판을 새겨 내는 데서부터 시작되어 활자의 발명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려의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 됨에 따라, 국가의 안전이나 국민의 행복을 부처의 보호에 의지하게 되고, 모든 문화적 실천이 여기서 출발하였던 것인데, 그 중에 가장 큰 사업이 대장경 간행이었다.

문종 때에 완성된 대장경에 이어, 대각국사 의천의 속대장경(續大藏經)이 완성되고, 고종 때 몽고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신앙심에서 나온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16년간이나 걸려서 완성되었던 것인데(1251), 지금 합천 해인사(海印寺)에 있는 이 경판은 불교에서뿐 아니라, 세계 문화사에 빛나는 보물의 하나인 것이다.

고려 후기에는 금속 활자도 만들어져 많은 인쇄술을 내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고종 21년(1234)에 금속 활자가 생겨났음은 서양의 활자보다 약 200년이나 앞서고 있는 사실로서, 우리 나라 문화가 얼마나 일찍 발달되었는가를 말해 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