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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3국의 사회와 경제

[3] 3국의 사회와 경제

세 나라의 공통성

각 부족들을 단위로 해서 고대 국가를 이룬 고구려⋅백제⋅신라는 원래 같은 겨레였으므로, 낙랑의 세력을 몰아낼 때에도 3국이 서로 힘을 합하였고, 좋은 뜻에서의 경쟁도 하였다.

3국 가운데서 제일 먼저 중국 문화를 받아 들인 고구려나 씨족 사회 때의 전통이 짙게 남아 있던 신라 또는 백제는 언어⋅풍속⋅습관 등에 서로 공통되는 점이 많았다. 다른 점이라면 고구려의 기질이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데 반하여, 백제는 중국의 육조 문화의 영향을 받아 온화하고 조화를 이룬 데 그 특징이 있으며, 신라는 현실적이면서도 독창성을 지녀 뒷날 찬란한 민족 문화를 이룩한데 의의가 있다.

정치 생활

정치 제도나 통치 방법에 있어서도 3국은 명칭은 달랐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공통성을 지니고 있었다. 왕은 세습되었고, 귀족과 평민 사이의 구별은 엄격하였다.

고구려는 벼슬아치를 12관등으로 나누었으며, 지방을 5부로 구분하여 다스렸고, 백제는 16관등과 5방으로 나누었고, 신라는 17관등에다 5주를 두었다. 세금은 조(租)와 세(稅)의 두 가지가 있었는데, 조는 토지에 따라 징수하는 것이며 세는 가족의 수효에 따라 특산물 또는 포목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약간의 예외가 있었다.

법은 엄하여 반역자⋅살인자들은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예로 삼는다거나 도둑질한 물건은 두 배로 갚게 한 것 등은 모두 비슷하였다. 병역은 일정한 나이에 달한 사람이면 모두 군대에 들어가게 했다.

경제 생활

3국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으며, 신라와 백제에서는 일찍부터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둑과 저수지를 많이 만들었다. 지금도 이 때 만든 저수지와 둑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벽골제(碧骨堤)는 유명하다.

토지는 국유제를 원칙으로 하여 귀족과 관리들에게는 신분에 따라 토지를 나누어 주었고, 평민에게도 일할 연령에 이르면 땅을 주어 농사를 짓게 하였다. 농업 이외의 산업은 아직 자급 자족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상업도 발달하지 못하여 시장에서는 물물 교환이 행하여졌을 뿐이다. 외국 무역은 조공(朝貢)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이루어졌을 뿐이며, 상인들의 무역은 아직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

사회 생활

3국의 사회 계급은 귀족⋅평민⋅노예로 구성되었다. 귀족들만이 정치에 참여하고 관리가 될 수 있었는데, 귀족들은 원래 세력 있는 씨족에서 나왔던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5부족이 가장 세력이 컸으며, 백제에는 8성(姓)이 세력이 컸고, 신라에는 골품제(骨品制)가 있었다. 신라의 귀족은 6가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 중 왕이 될 수 있는 계급은 성골(聖骨)과 진골(眞骨)이었다.

평민은 주로 농사를 짓고 납세와 병역의 의무가 있었다. 전쟁 포로⋅빚진 사람⋅귀화인⋅죄인 등은 노예가 되어 최하 계급을 이루었다. 특히 신라에는 화랑 제도가 있어 귀족의 자제들을 모아 무술을 닦게 하고 예의와 학문을 가르쳤는데, 특히 이들에게는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게 하였다. 이 화랑도는 후에 3국을 통일하는 데 이바지함이 컸다.

또 화백(和白)이라는 제도가 있어 나라의 중대한 일을 결정지었다 하며, 음력 8월 보름을 가배(嘉俳)라 하여 명절로 정하였는데, 오늘날의 추석은 이 때에 유래된 것이다. 귀족들의 옷은 모시와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평민은 베로 된 옷을 입었다.

《주요 용어》

벽골제, 조세, 골품제, 성골, 진골, 화랑도, 화백, 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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