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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으로 흔들리는 고려

이자겸과 묘청

태평한 세월이 오래도록 계속되자 귀족들은 사치와 안일을 즐기는 한편 정치적 야심을 품게 되어 고려 사회는 차차 어지러워 갔다. 이자겸(李資謙)은 외척으로서 세도를 부리다가 드디어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곧 진압되었으나 이후 고려 사회는 귀족들의 세력 다툼으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묘청(妙淸)은 서울을 서경(평양)으로 옮기면 북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약 1년 만에 김부식(金富軾)에게 진압되었다.

묘청은 풍수설을 이용하여 나라를 혼란케 하였지만, 고려의 자주성과 북진 사상을 북돋움으로써 사대주의로 흐르기 시작한 고려 사회에 큰 자극을 주었다.

문무의 알력과 사회의 혼란

두 번의 난으로 말미암아 나라 안이 혼란해지자 귀족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더 많은 토지를 차지하려고 골몰하였다.

같은 지배 계급 가운데서도 무신들은 문신들의 천대와 횡포를 받아 왔는데, 정중부(鄭仲夫) 등의 무신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1170) 문신들을 몰아 내고 세력을 잡았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무신의 난이 있었으나 드디어 최충헌(崔忠獻)이 정권을 잡고 60여 년간 무단 정치를 폈다.

무신의 반란은 고려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혀 고려의 장래를 그르쳤다. 한편 혼란된 고려 사회에서 최하의 계급으로 천대와 멸시를 받아 오던 노예 계급까지도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난을 일으켰으며, 또 괴로움에 허덕이던 농민들도 각지에서 민요(民擾)를 일으켰다.

《주요 용어》

이자겸, 서경 천도, 사대주의, 정중부, 무신의 난, 최충헌, 무단 정치

◇ 연습 문제 ◇

1. 왕건의 후삼국 통일이 손쉽게 이루어진 까닭은 무엇인가?

2. 고려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가?

3. 고려의 토지 제도는 어떠하였는가?

4. 고려의 교육 제도와 과거 제도는 어떠하였는가?

5. 무신의 난이 일어난 원인은 무엇인가?

6. 묘청의 난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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