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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기울어져 가는 고려

[2] 기울어져 가는 고려

자주성의 상실

몽고는 삼별초를 평정한 다음 북쪽 지방에 쌍성 총관부와 동녕부를 설치하고 철령과 자비령 이북을 경계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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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지배하의 고려
원 지배하의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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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의 이름도 몽고식으로 고치고 왕자의 교육은 원 나라에 가서 받게 하였다. 특히 결혼 정책으로 고려의 정신을 꺾어 버리려 하였다.

고려의 민생고를 더욱 심하게 한 것은 몽고의 일본 정벌이었는데, 쿠빌라이는 일본을 칠 계획으로 고려에게 전함⋅군사⋅군량을 준비시켰다. 일본 정벌은 태풍으로 두 번이나(1274, 1281) 실패하였고, 고려는 지칠 대로 지쳤다. 그 후 원은 정동행성(征東行省)이란 관청을 남겨 두고 고려의 행정을 계속 감시하였으며, 경제적으로도 착취를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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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몽군의 일본 원정
려⋅몽군의 일본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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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태가 약 100년 동안 계속되어 몽고의 언어⋅복장⋅음식 등에 관한 풍습이 전하여지고, 또 우리 나라 풍습이 원 나라에 들어가서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였다.

공민왕의 중흥

원 나라가 차츰 쇠약하여지는 틈을 타서 공민왕은 원의 지배를 벗어나 자주성을 다시 찾으려는 정책을 썼다. 관제⋅복장을 비롯한 몽고풍을 없애고 간섭하는 원의 기관을 몰아 내는 한편, 국경 지대에 있는 몽고 세력마저 쫓아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새로운 정치 기풍도 그릇된 신하들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홍건적과 왜구

중국에서 일어난 홍건적 무리들이 고려에까지 들어와서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홍건적을 물리치자 이번에는 남쪽의 왜구가 가끔 도적질을 일삼았는데, 14세기에는 황해도 해안까지 쳐들어온 때도 있었다. 최무선(崔茂宣)이 화포(火砲)를 만들어 이들을 치려고 쓰시마 섬까지 원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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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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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의 몰락

안과 밖으로 이와 같이 어려운 사정에 놓여 있을 때, 시중(侍中)으로 있던 최영(崔瑩)은 명 나라를 치기 위하여 요동 지방을 공격할 것을 주장하였다. 요동 출병에 반대하였던 이성계(李成桂)는 위화도(威化島)에서 조민수를 설복하여 개경으로 되돌아와 최영 등 친원파를 몰아 내고 정치의 실권을 잡은 후, 토지 제도를 바로 잡기 위하여 조준(趙浚)의 의견을 들어 근본적인 개혁을 하였다. 토지를 다시 측량하여 새로 나누어 주고 묵은 토지 문서는 불살아 버렸다. 이 개혁으로 구 귀족은 몰락하고 이성계를 중심으로 모여든 새로운 세력이 많은 토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영, 이색 등이 없어진 뒤에 정몽주는 홀로 무너져 가는 고려를 근심하다가 선죽교에서 암살당하였다. 이성계는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고려는 475년 만에 망하고(1392), 이씨의 조선 왕조가 시작되었다.

《주요 용어》

동녕부, 쌍성 총관부, 일본 정벌, 홍건적, 화포, 왜구, 위화도, 토지 개혁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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