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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원 5. 조선 시대의 변천과 근대 세계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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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왜란과 호란

[2] 왜란과 호란

두 차례의 왜란

세종 때에 삼포(三浦)를 연 후, 이 곳에 사는 일본 사람의 수가 늘어 나면서 그들의 행패가 심해지자 한때 삼포의 문을 닫은 일까지 있었다.

일본을 통일하여 세력이 커진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선조 25년(1592)에 15만 군대로 우리 나라에 침입해 왔는데, 이것이 임진 왜란(壬辰倭亂)이다.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한 조정에서는 급히 이일(李鎰)과 신립(申砬)을 보내어 싸우게 하였으나, 조총(鳥銃)으로 장비한 왜군을 막지 못했다.

왜군은 부산에 상륙한 후 단시일에 서울을 거쳐 평양⋅함경도 지방까지 쳐들어왔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거북선과 훈련된 수군을 이끌고 잘 싸워 왜군을 격파했으며, 특히 한산도(閑山島)의 승리는 우리 나라 해전 사상에 빛나는 통쾌한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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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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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권을 잃고 보급로가 막히자 육전에서 승리했던 왜군도 몹시 당황하게 되었다.

이 때 조헌(趙憲)⋅곽재우(郭再祐)⋅김천일(金千鎰) 등의 유학자와 휴정(休靜)⋅유정(惟政) 같은 승려들은 각처에서 의병을 모아 왜병을 무찔렀다.

보급로가 차단된 왜군은 이듬해 평양으로부터 후퇴하였다. 원군으로 도착한 명 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은 왜군을 추격하여 가다가 벽제관에서 패하였으나, 권율(權慄)은 행주(幸州)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때 명의 심유경이 휴전을 제안하니 왜군도 이에 응하여 일단 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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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 왜란 육전도
임진 왜란 육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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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도에서 회의가 결열되자 왜군은 선조 30년(1597)에 다시 쳐들어왔다(정유 재란). 왜군은 충청도 직산까지 왔으나 우리 군대에 막혀 더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남쪽 해안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일본 해군을 명량(鳴梁) 등 여러 곳에서 무찔렀다.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노량(露梁)에서 물러 가는 왜군을 공격하다가 전사하였다. 왜군은 도망할 길을 얻어 본국으로 물러 가니 이로써 7년 간의 큰 싸움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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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 정유 왜란 해전도
임진 정유 왜란 해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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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의 영향

왜란은 우리 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방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인구는 줄고 농촌은 황폐하였으며, 재정은 매우 궁핍했다. 또한 유명한 건축⋅사고(史庫) 등 많은 문화재가 불타거나 약탈을 당하였다. 한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와 화차(火車) 같은 새로운 무기가 나오고, 국방 강화를 뼈 아프게 느낀 조정에서는 훈련 도감(訓練都監)을 두어 군사를 기르게 되었다.

일본은 우리 나라의 발달된 도자기 제조 기술과 활자 인쇄술을 배워 갔다. 그 후 토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가 일본의 정권을 잡고 우리와 수교할 것을 청하여, 두 나라는 사절을 교환하기도 하고 통상 무역도 다시 열었다. 담배와 고추는 이 무렵에 일본과의 교역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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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의 행렬
통신사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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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과 북벌 계획

광해군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仁祖)는 만주에서 새로 일어난 후금(後金)을 배척하고 명과 가까이 지내었다. 마침내 1627년 후금의 태종(太宗)이 쳐들어오므로 앞으로 화친할 것을 약속하고 후금의 군대를 돌려 보냈다.

세력이 강해진 후금은 국호를 청(淸)이라 고치고 명 나라를 치고자 우리 나라에 무리한 요구를 해 왔다. 인조가 이를 거절하니, 청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왔다(1636).

압록강을 넘어 단숨에 서울까지 쳐들어온 청군은 인조가 피해 있는 남한 산성을 포위하였다. 이 때 성중에서는 최명길(崔鳴吉) 등의 주화파와 김상헌(金尙憲) 등의 항전파로 갈라져 의견이 대립되었다. 식량의 부족과 강화도의 함락 등으로 충격을 받은 인조는 드디어 삼전도(三田渡)에서 항복하였으니, 이 전란을 병자 호란(丙子胡亂)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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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 비석
삼전도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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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때 청에 붙들려 갔던 효종(孝宗)은 왕위에 오르자 오랑캐에게 받은 굴욕을 씻으려고 군사를 길러 북벌을 계획하였으나, 즉위 후 10년 만에 죽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주요 용어》

삼포, 의병, 행주 싸움, 한산 싸움, 진주 싸움, 비격진천뢰, 삼전도, 김상헌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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