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문화의 융성

새 나라가 건국된 후 제도가 갖추어져 정치가 안정되는 한편, 농본 정책의 추진과 왕도 정치의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여러 가지 노력이 있어 국민 생활도 자리잡혀 갔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배경으로 고려의 문화를 폭넓게 소화, 계승하고, 그 바탕 위에 유교 문화의 새로운 면을 받아들여 민족의 슬기를 여러 모로 펴고자 하는 활동이 활발해져 민족 문화는 크게 발전하였다.

조선의 문화는 세종에서 세조, 성종 때에 걸쳐 크게 융성하여, 이 시대의 민족 문화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선의 문화는 유교와 양반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으나, 고려 시대에 비하여 문화적 기반이 확대되고 문화의 폭이 넓어졌다.

한글의 창제와 그 의의

조선 초기의 문화적 업적 가운데 민족 문화사상 가장 중요한 일은 한글을 창제하여 민족의 고유 문자를 마련한 점이다. 우리 나라는 오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지녔으나, 그 때까지도 고유 문자를 가지지 못하여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써 왔었다.

세종은, 우리 고유의 언어에 알맞으며, 배우기 쉽고, 자유로이 자기 생각을 적을 수 있는 우리글을 만들기 위해 최항, 신숙주 등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28자의 표음 문자인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 세종은 새 문자로 용비어천가를 지어 보고 이 글자를 실용하는 데 자신이 생기자, 창제 3년 만에 세상에 반포하였다(1446).

한글은 세종의 민족 의식과 민족애가 깃들인,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우리 문자이다. 한글은 비록 당시의 일부 양반 계급에게는 환영받지 못하였으나, 그것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는 참으로 크다. 한글에 의하여 우리 민족은 우리의 슬기를 우리글로 마음껏 펼 수 있게 되었다.

활발한 편찬 사업

역대 국왕은 학문 발달에 힘쓰는 한편, 역사, 지리, 법전, 예악에 관한 많은 도서의 간행 반포에 노력하였다. 특히, 세종에서 성종 시대에 걸쳐 집현전이나 홍문관의 학자들은 전통 문화를 정리하여 여러 가지 고전을 간행하였다.

경국대전, 치평요람 등의 책이 편찬되었고, 역대 국왕의 실록이 편찬되어 네 곳의 사고에 보관되었으며, 국조보감이 편술되어 정치적 교훈서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통감 등의 역사서도 편찬되었다.

한편, 국정에 필요한 지리 지식을 얻기 위해 팔도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다.

또한, 농업 기술서인 농사직설이나 한방 의약서인 향약집성방도 주목할 만한 도서들로서, 기술 문화 발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유교적 예절 생활의 지침을 주기 위하여 국조오례의나 삼강행실도가 편찬, 반포되어, 유교적인 예의, 도덕과 풍속 생활이 우리 사회에 굳건하게 뿌리를 박게 되었다.

성리학의 발달

고려 말기에 원에서 도입된 성리학은 조선 시대 유학의 지배적인 흐름을 이루고 정치, 사회, 교육과 도덕 생활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 초기의 유학자들은 유학을 다만 학문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유학의 근본 사상과 인륜 도덕이 왕도 정치를 펴고 유교적 사회를 이루는 데 공헌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태조 때의 정도전, 권근이나 세종, 세조 때의 최항, 정인지, 신숙주, 양성지 등이 그 대표적인 학자로, 그들은 고려 시대의 학자들이 시문에 힘쓰고 경전 해석에 골몰하던 것과는 달리, 학문도 연구하고 직접 정치에 관여하는 이른바 관학파의 학자들이었다.

한편, 이들 정치 활동과 관계가 깊었던 유학자와는 달리, 정치를 멀리하고 지방에서 성리학을 연구하고 제자를 키우는 일에 힘쓴 학자도 있었다. 이러한 학자들은 대개가 길재의 학문을 이어 영남 지방에 거주하던 사림파의 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성리학이 우리 민족에 의해 소화되고 마침내 우리 민족의 학문으로 정착된 것은 서경덕, 이언적, 기대승이나 이황, 이이 등이 활동함으로써부터이다.

서원과 향약

서원이란 선현을 받들어 제사지내고 지방 유생들이 모여 독서, 강학하는 기관으로, 지방의 선비들은 서원에 모여 학문을 토론하고 연구하였으며, 또한 후진을 교육하여 그들의 학통을 잇게 하였다.

이와 같이, 서원이 학문 연구와 교육 활동에 큰 구실을 하였으므로, 국가에서는 사액 서원 제도를 실시하여 그들의 활동을 후원하였다.

서원이 각지에 생겨나자, 종래 서울을 중심으로 하거나 소수의 지방 학자들 사이에서만 다루어지던 학문 활동이 각지로 번지게 되어 지방 문화 발전을 돕게 되고, 또한 성리학이 보다 넓은 기반과 깊은 학문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한편, 중종 전후로부터 유교적인 정신을 담은 자치적 규약인 향약이 각지에서 조직, 운영되기 시작하여, 유교적 예속과 도덕이 지방 생활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황과 이이

조선 성리학자로 특히 학문적 공헌이 크고 또한 후세에 큰 영향을 남긴 사람은 이황과 이이였다. 이들은 선학의 뒤를 이어 성리학을 우리의 학문으로 끌어올린 뛰어난 학자이고, 또한 많은 제자를 키워 후세에 큰 영향을 끼친 조선 성리학의 쌍벽이다.

이황은 고향인 예안에 도산 서당을 세우고 학문 연구에 힘써 많은 성리학 관계의 책을 펴냈으며, 한편 유성룡 등 고명한 제자를 길러 내어 영남 학파의 스승으로 받들어졌다, 그의 저서는 뒷날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 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이이는 정치에 관계하면서도 많은 성리학서를 저술하였고, 김장생 등 여러 학자를 길러 내어 기호 학파의 조종으로 받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10만 양병설을 주장하고, 교육 관계의 많은 규칙을 이루는 등 군사⋅교육⋅사회면에도 공헌한 바 컸다.

과학 기술의 발달

고려 시대에 전해진 중국과 아라비아의 과학 지식을 소화함으로써 조선의 과학은 크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편찬 사업이 활발해지자 고려 이후로 인쇄술이 더욱 발달하였다. 태종 때에는 주자소를 설치하고 금속 활자의 개량이 거듭되었다.

신라 이래의 전통을 이어 내려온 천문 기술을 위하여 서운관(후의 관상감)을 설치하여, 천문뿐만 아니라 지리, 역법 및 누각 기술까지 담당하였다. 간의, 혼천의, 자격루, 해시계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여 궁중에 설치했고, 천문 관측에 힘썼다.

과학 기기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측우기였다. 1441년, 전국 각지에 쇠로 제작된 측우기를 설치하고 우량을 측정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실시된 것이다. 이러한 과학 기기 제작에는 이천, 장영실 등의 공헌이 컸다.

한편, 한방 의학도 크게 발전되어 많은 한의학 서적이 편찬되었는데, 특히 허준이 엮은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 한방 의학에까지도 큰 영향을 주었다.

미술과 공예 활동

조선에서는 고려와는 달리, 유교 생활에 바탕을 둔 예술 활동이 주로 전개되었다.

회화는 국가적 필요에서 설치된 화원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물화나 기록화가 제작되었고, 이 밖에 양반의 취미에 맞는 산수화를 즐겨 그렸다. 화가로는 양반 출신의 강희안과 화원 출신의 안견, 최경, 이상좌 등이 유명하였다. 서예는 양반의 교양으로 장려되었는데, 선조 때의 한호가 명필로 알려졌다.

또, 새 왕궁의 건립으로 장엄한 궁궐 건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왜란으로 대부분이 불타 버렸고,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로는 남대문 등 몇 개의 문루뿐이다. 서울 파고다 공원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조선 전기 석탑 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다.

한편, 공예 활동의 대표적 작품은 자기이다. 이 때의 자기 예술은 귀족적인 고려자기와는 달리,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백자가 각지에서 생산되었다.

음악과 오락 생활

음악도 세종 때에 큰 발전을 보였다. 박연은 세종의 명을 받들어 새로운 악기를 제작하고 악보를 정리하여 아악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음악에서 특기할 일은, 정간악보나 궁상하보를 발명하고 아악보 12권을 만들어 궁중 음악의 자주화를 꾀한 점이다.

동양 음악 연구에 있어 가장 귀중한 자료라는 악학궤범도 이즈음에 간행된 것이다.

궁중 음악과는 별도로 속악도 자라났다. 또, 궁중 예악의 필요에서 궁중 무용이 발달하였고, 민간에서는 농악무, 무당춤, 승무 등의 민속 무용을 즐겼다.

한편, 산대놀이라는 가면극과 꼭둑각시놀음이라는 인형극을 농촌 사회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