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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Ⅰ. 조선 사회의 새로운 움직임
  • 4. 문예 활동의 새 경향

4. 문예 활동의 새 경향

〔학습 개요〕

조선 후기에는 문화 활동이 조선 전기에 비해 더욱 다양해졌다. 농촌 사회의 경제적 발전과 서당 교육의 확대를 배경으로 서민층의 문예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문화의 폭은 양반에서 서민층에까지 확대되었고, 문예 활동의 내용도 서민 중심으로 바뀌어 갔다.

그림으로는 산수화, 풍속화, 민화가 유행하였고, 공예에서는 실용성이 강조되었다. 한편, 서민 오락이 각 지방의 고유한 풍속으로 발전하였다.

학습 문제

1. 조선 후기 문화의 새로운 움직임들은 무엇인가?

2. 국문학의 활동과 여성의 문예 활동은 어떠하였는가?

3. 조선 후기의 그림과 공예의 특색은 무엇인가?

4. 조선 후기의 서민 오락 활동은 어떠하였는가?

교육의 보급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아졌다. 서민의 자제들은 양반 자제와 함께 서당에서 읽기와 쓰기의 기초 교육을 받았다. 서당은 조선 전기에도 있었으나, 후기에는 더욱 확대되어 마을마다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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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서당도
김홍도의 서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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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서당 교육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자, 농민들 가운데서도 지식을 깨우쳐 학식을 갖춘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또, 종래의 사회적 활동이 막혀 있던 여성 중에서도 한글을 익힌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하여 이 무렵에는 서민과 부녀자를 대상으로 하는 한글 소설 등의 서민적인 작품이 많이 나왔다.

국문학의 발달

한글은 반포된 후 오랫동안 양반 계층에 의해 천대를 받았다. 그러나 신경준, 유희 등에 의해 한글이 연구되었고, 안방글이라는 천대 속에서도 부녀자층에 보급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한글을 깨친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 서민들에게 널리 읽혀진 한글 소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홍길동전, 구운몽, 춘향전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인데, 이것들은 오늘날까지 읽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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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구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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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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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독특한 멋을 풍기는 시조 문학에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즉,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을 자유로이 나타내는 사설시조가 유행하였다.

여성의 문예 활동

유교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 참고 순종하는 일을 여성의 제일 미덕으로 여겼으며, 여성에게는 사회적 활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들이 바깥 출입을 할 때에는 장옷이나 너울을 써야 했으며, 또 남녀 칠세 부동석 등의 유교 관념에 묶여 내외의 구별을 엄격히 하였다.

이와 같이, 여성들은 모든 방면에서 사회적 활동이 거의 막혀 있었지만, 이들 중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일부 여성들은 문예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도 하였다.

선조 때를 전후하여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이매창 등이 활약하였는데, 특히 신사임당은 시문과 서화에 능하였다. 18세기 이후로는 혜경궁 홍씨 등이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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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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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와 그림

당시의 양반들은 교양으로 붓글씨를 익혔다. 따라서, 서예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 많았는데, 조선 후기에는 특히 김정희가 명필로 유명하였다. 그는 추사체라고 일컬어지는 독특한 서체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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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글씨
김정희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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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는 산수화, 풍속화, 민화가 즐겨 그려졌다. 정선은 우리 나라의 여러 경치를 독특한 화풍으로 그리는 진경 산수화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는데, 그의 그림으로는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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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금강전도
정선의 금강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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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은 이 시대의 생활 모습이 담긴 풍속화를 즐겨 그렸다. 특히 김홍도는 농민, 수공업자, 상인 등의 민중 생활 모습을 구수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신윤복은 도시 양반의 풍류 생활을 풍자적으로 잘 묘사하였다. 김홍도는 씨름도 등의 작품을 남기고, 신윤복은 선유도 등의 작품을 남겼다.

한편, 민화가 유행하였는데, 민화에는 서민들의 생활 감정이나 신앙에 관련된 내용들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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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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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공예

조선 후기에 이루어진 건축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화엄사의 각황전, 법주사의 팔상전 등이 유명하다.

정조 때에 만들어진 수원성에는 조선 후기 성곽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성을 쌓을 때에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가 사용되었다.

공예로는 도자기 공예, 목공예 등이 발달하였다. 자기 중에서도 청화 백자가 널리 보급되었다. 청화 백자는 흰 바탕에 푸른 색깔로 그림을 넣은 자기로서, 꽃병, 연적 등 실용적인 것들이 많았으며, 실생활에 널리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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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백자
청화 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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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품으로는 장롱, 궤, 문갑, 책상, 소반 등 생활 용품이 있으며, 그 제작이 활발하였다. 이 밖에, 죽제품, 나전 칠기 등의 제작 기술도 발달하였다.

서민 오락

조선 후기에는 서민 오락도 발달하였다. 한글 소설의 내용을 우리 나라 고유의 창법에 따라 노래와 말로 풀어 가는 판소리가 나타났고, 이것을 극으로 꾸민 창극도 발달하여 서민들을 즐겁게 하였다.

농촌에서는 두레를 중심으로 농악을 즐겼고, 지방에 따라 탈춤, 오광대놀이, 꼭두각시놀이 등 그 지방 고유의 오락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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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
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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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해안 지방의 부녀자들은 달 밝은 밤에 강강술래를 즐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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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서민 오락
조선 후기의 서민 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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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습 정리 ◇

1. 조선 후기에는 서당 교육의 보급과 서민 생활의 성장을 바탕으로 서민층의 문예 활동이 활발해졌다.

2. 국문학에서는 홍길동전 등의 한글 소설이 발달하고, 대중적인 사설 시조가 유행하였으며, 여성들의 문예 활동도 활발해졌다.

3. 그림에서는 한국적이며 서민적인 정취를 표현한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가 발달하였으며, 또한 민화도 유행하였다.

4. 공예로는 도자기 공예, 목공예, 나전 칠기 등이 발달하였고, 자기 중에서는 청화 백자가 널리 보급되었다.

5. 서민 오락으로는 한글 소설을 노래와 말로 풀어 가는 판소리가 나타났고, 이를 극으로 꾸민 창극이 발달하였으며, 탈춤과 오광대놀이 등 지방 고유의 놀이가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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