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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Ⅳ. 통일 국가의 성립
  • 1. 삼국의 통일

1. 삼국의 통일

학습 개요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삼국을 통일하였다.

백제는 의자왕의 잦은 신라 공격에 따른 국력 소모와 지도층의 내분으로 쇠약해지면서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되었다.

고구려는 수 및 당과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의 소모가 많았고, 연개소문의 독재 정치와 지도층의 권력 다툼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마침내 멸망하였다.

그 후 신라는 당나라의 영토적 야욕을 분쇄하여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는데, 이로써 민족 문화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학습 문제

1.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원인은 무엇인가?

2. 신라가 나⋅당 전쟁에서 승리한 요인은 무엇인가?

3. 삼국 통일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백제의 멸망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고구려가 중국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백제는 신라를 자주 공격하였다. 의자왕은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탈취하였고,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당항성을 공격하여 신라에서 당으로 가는 교통로를 끊으려 하였다.

이에 어려움을 맞게 된 신라는 당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진덕 여왕은 김춘추를 당에 보내어 친당 정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무렵 의자왕은 성충, 흥수와 같은 충신을 멀리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이에 민심은 멀어져 갔고, 나라의 살림은 기울기 시작하였다.

이 기회를 틈타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이 당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백제를 공격하였다. 신라군은 계백의 결사적인 저항을 물리치고 당군과 함께 사비성을 함락시켰다(660). 당은 사비성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백제의 옛 땅에 웅진 도독부 등 5도독부를 두어 이 지역을 그들의 지배하에 넣으려고 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 백제인들은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은 주류성에서, 흑치상지는 임존성에서 군사를 일으켰는데, 여기에 200여 성이 호응하여 그 기세가 드높았다. 그러나 백제의 부흥 운동은 지도층의 분열로 인하여 실패하였고, 이를 도우려던 일본 세력도 백강에서 격퇴되었다.

고구려의 멸망

백제를 멸망시킨 후, 신라와 당은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서둘렀다. 당군은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고구려는 이를 잘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는 수⋅당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의 소모가 컸으며, 연개소문의 독재와 지도층의 내분으로 어려움이 겹쳤다. 이러한 기회를 틈타 나⋅당 연합군은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668).

당은 평양에 안동 도호부를 두어 고구려의 옛 땅을 지배하려 하였다. 이에 고구려의 유민들은 곳곳에서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특히, 검모잠은 왕족 안승을 왕으로 받들고 고구려를 부흥시키려 하였다.

나⋅당 전쟁과 삼국 통일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에 대동강 이남의 지역을 신라에게 준다는 약속을 어기고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의 부흥군을 지원하면서 당군을 몰아 내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먼저, 신라는 백제의 옛 땅을 수복하기 위하여 고구려의 왕족인 안승을 보덕왕으로 삼았고, 동시에 당군이 주둔하고 있던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웅진 도독부를 없애 버렸다.

이후 당군의 계속적인 침략에 맞서 신라는 끈질긴 항쟁을 벌였다. 신라군은 당군과 매소성, 기벌포 등지에서 싸워 이를 크게 격파하였다. 당은 마침내 안동 도호부를 평양성에서 요동성으로 옮겨 한반도로부터 물러나고 말았다. 이로써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다(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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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고구려의 부흥 운동과 나⋅당 전쟁
백제, 고구려의 부흥 운동과 나⋅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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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통일은 그 과정에서 외세의 지원을 얻었다는 점과, 대동강 이남에 한정된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점에 그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신라가 당의 야욕에 대항하여 끈질긴 항쟁을 벌여 이를 물리치고 통일을 완수하였다는 사실은 신라인의 자주적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신라의 삼국 통일은 최초의 민족 통일로서 새로운 민족 문화를 건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움글

* 문무왕의 호국 정신

문무왕은 신라의 제30대 임금으로, 아버지는 태종 무열왕인 김춘추이고, 어머니는 김유신의 동생인 문희이다. 일찍부터 아버지를 도와 통일 전쟁에 앞장 섰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국가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는 660년에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후 고구려 정벌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 결과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며, 신라까지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던 당군마저 매소성 등에서 크게 격파하여 이를 물리쳤다. 이로써 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만을 잇는 국경선 이남의 영토를 확보하면서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룩하게 되었다.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은 전쟁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는 데에 노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평소에 왕은 지의 법사에게 “내가 죽은 뒤에는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지키려고 한다.”고 말하였다.

법사가 “용은 짐승인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으니, 왕은 “내가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이니, 비록 짐승인 용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개의치 않으리라. 그것은 오히려 나의 소망에 꼭 맞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이러한 왕의 소망을 받들어 동해 바다의 큰 바위 가운데에 장사지냈다. 후대에 그 바위를 가리켜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이는 죽어서라도 동해의 해룡이 되어 일본의 침략을 막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보여 준 것으로 국민에게 호국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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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경북 경주)
대왕암(경북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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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정리

1. 7세기에 동북 아시아에서 남북과 동서의 두 세력 간의 대결이 장기화되면서 백제와 고구려는 국력이 소모되고 지도층의 내분이 겹쳐 멸망하였다.

2. 신라는 고구려 유민의 부흥 운동을 지원하면서 강한 단결력으로 당의 야욕에 맞서 나⋅당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3. 신라의 삼국 통일은 최초의 민족 통일로서 새로운 민족 문화 발달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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