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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통일을 위한 노력

학습 개요

남북한 간의 극한적인 대립은 국제 정세의 변화로 크게 바뀌어 대한 민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선의의 경쟁을 제안하였다. 그리하여 분단의 현실을 인정하고 대결 태세를 완화하기 위해 남북 적십자 회담을 제의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평화 통일을 선언한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후 남북 대화가 진행되면서 이산 가족의 고향 방문과 예술 공연단의 교환 방문 공연이 이루어졌고, 고위급 회담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어서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였으며, 남북 기본 합의서와 비핵화 공동 선언을 채택하는 등 평화 공존 원칙에 합의하였다.

학습 문제

1. 7⋅4 남북 공동 성명의 의의는 무엇인가?

2. 민족의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는 어떻게 수행되어 왔는가?

3. 6⋅25 전쟁 이후 북한의 정치는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는가?

7⋅4 남북 공동 성명

6⋅25 전쟁이라는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겪은 후에도 남한과 북한의 무력 대결의 상태는 계속되었다.

그 이유는 민족 분단의 상황에서 서로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불신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남북한의 무력 대결이나 극한적 대립의 상태는 196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크게 변화하였다. 미국은 닉슨 독트린을 선언하여 긴장 완화 정책을 추구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였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전환 속에서, 정부는 남북한 사이의 선의의 경쟁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정부가 분단 현실을 인정하고, 남북한의 대결 상황을 완화하려는 노력이었다.

한편, 대한 적십자사는 북한에 대하여 이산 가족 찾기를 위한 남북 적십자 회담을 제의하였으며, 북한 적십자사는 이 제의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남북 대화의 새 전기가 마련되었고, 이후 남북 적십자 회담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여러 차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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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적십자 회담
남북 적십자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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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 회담으로 협상의 길을 연 남북한 당국은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7⋅4 남북 공동 성명은 자주 통일, 평화 통일, 민족적 대단결의 3대 원칙을 내세웠으며, 통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조절 위원회의 설치에 합의하였다(1972).

남북 적십자 회담과 남북 조절 위원회 회의는 그 후 몇 차례 개최되었으며, 정부는 한반도에 두 개의 정치 체제가 존재하는 현실에 근거하여 6⋅23 평화 통일 외교 정책을 선언하였다. 이는 남북한 간의 긴장 완화와 국제 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과 함께 국제 기구에 참여하겠다는 것으로, 평화 공존을 위한 제의였다.

이러한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은 남북 대화가 중단된 후에도 계속되어 우리 정부는 북한에 상호 불가침 협정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유엔 가입

1980년대에 이르러 재개된 남북 간의 대화는 부분적인 실효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산 가족 고향 방문단 및 예술 공연단의 교환 방문이 성사되기도 하였다(1985). 이와 아울러 정부는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전개하여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국교를 수립하였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련 및 중국과도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냉전 체제가 해소되어 감에 따라 우리 정부의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의 일부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 후 우리 정부는 자주, 평화, 민주의 원칙 아래 통일 민주 공화국을 구성하자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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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방문한 예술 공연단
평양을 방문한 예술 공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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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서울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린 이래 서울과 평양에서 여러 차례 회담이 개최되었다.

한편, 체육 분야에서 탁구와 축구의 남북한 단일 팀이 구성되어 국제 대회에 참가함으로써 훌륭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고,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통일 축구 경기를 교환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하여 국제 사회에 동반자 관계임을 인식시켰다(1991).

그리고 남북한 정부 당국 사이의 공식적인 합의를 통해 남북 기본 합의서와 비핵화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는 남북한이 상호 화해와 불가침을 선언하고, 교류와 협력을 하며,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김영삼 정부는 통일을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화해⋅협력, 남북 연합, 통일 국가 완성의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 방안을 발표하였다.

북한의 변화

소련군의 후원으로 권력을 장악한 김일성은 6⋅25 전쟁 이후 정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패전 책임을 물어 이들을 숙청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또한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 시설을 복구하기 위해 천리마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주민들의 생산 의욕을 고취시켜 노력 경쟁을 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공산주의의 물질적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천리마 운동은 단순한 노력 경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적인 개조를 통하여 공산주의적인 인간형을 창조한다는 의도가 내포된 것이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내걸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내세우며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사상 혁명의 강조는 김일성 1인 독재 체제가 확립된 후에는 유일 사상 체계를 세우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북한 사회 전체가 김일성 중심적인 체제로 변모되었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여 당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고, 모든 주민들은 그의 지도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였다.

이러한 김일성의 정책은 김정일에게 이어졌다. 김정일은 1970년대 초부터 등장하여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지도하면서 후계자의 지위를 굳혀 갔는데, 김정일의 지위는 1980년대 들어 당을 실질적으로 장악함으로써 더욱 확고해졌다.

김정일은 1990년대에 들어서는 당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 기관에 있어서도 김일성의 뒤를 이은 실권자로서 지위를 굳혔고, 김일성이 사망하자 최고 지도자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이와 같은 권력 세습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처음 있는 일로서 폐쇄된 사회의 단면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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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하는 북한 학생들
등교하는 북한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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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나아갈 길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단순하게 옛날의 사건을 암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배움으로써 현재의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아가 보다 나은 미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학습한 민족사의 발전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나아갈 길을 찾고, 그를 위하여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위하여 가장 긴급하고 또 중요한 것은, 민족의 통일, 국토의 통일이다. 우리 민족은 본래 한 핏줄로 이어져 내려 온 단일 민족으로서, 하나의 국가를 이룩하고, 하나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국토가 분단되어 남북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민족의 분단, 국토의 분단은 우리 민족 최대의 불행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북 통일을 빠른 시일 안에 성취시켜야 하겠다.

다음,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 전통을 창조적으로 이어 가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고유 문화를 가꾸고 이를 잘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근래에 우리 주변에서는 서양 문화를 떠받들고, 우리의 고유 문화를 경시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 자체는 나무랄 이유가 없다. 문화 교류는 오히려 민족 문화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 나라의 문화는 고유한 전통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그 위에 밖으로부터 외래 문화가 신선한 자극으로 전해져 올 때 더욱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는 이러한 깨달음에 힘입어, 우리의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우리의 나아갈 바를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대한 민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보여 준 뛰어난 역량과 문화 민족으로서의 긍지가 이룩해 놓은 결실이라는 점을 명심하여, 오늘의 우리 역사를 더욱 사랑하고 내일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도움글

*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1992년 2월 18일 발효)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 남북 공동 성명에서 천명된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하여 민족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장 남북 화해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제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

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지 아니한다.

제4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제5조 남과 북은 현 정전 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 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 정전 협정을 준수한다.

제6조 남과 북은 국제 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제7조 남과 북은 서로의 긴밀한 연락과 협의를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판문점에 남북 연락 사무소를 설치⋅운영한다.

제8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 정치 분과 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 화해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이하 줄임)

학습 정리

1. 7⋅4 남북 공동 성명은 자주 통일, 평화 통일, 민족적 대단결의 3대 원칙을 선언한 것으로 한반도에서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2. 대한 민국은 남북 적십자 회담, 남북 고위급 회담, 비핵화 선언 등 적극적인 평화 통일 정책을 추진해 왔다.

3. 6⋅25 전쟁 이후 북한은 김일성 독재 체제를 강화하였고, 이어 김정일 세습 체제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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