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중학교 국사 7차
  • Ⅱ. 삼국의 성립과 발전
  • 1. 삼국의 형성
  • [4] 가야가 연맹 왕국 단계에 머무른 까닭은?
  • 철의 나라 가야

철의 나라 가야

낙동강 하류 유역의 변한 땅에서 가야의 여러 나라가 일어났다. 삼국이 중앙 집권 국가로서 국가 조직의 정비에 힘을 기울이고 있을 무렵에 가야는 연맹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초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후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다.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류 지역의 해상 활동에 유리한 입지 조건과 철의 생산 및 교역 활동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김해 지방에는 질 좋은 철이 많이 나서 각종 철제 무기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덩이쇠를 만들어 화폐와 같은 교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가야는 낙동강 동쪽으로 진출하려는 시도가 신라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되자, 백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라를 견제하였다.

고구려가 왜군과 싸우는 신라를 돕기 위해 5만의 군대를 보내어 가야 지역을 공격해 오자, 금관가야는 큰 타격을 입어 맹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게 되었다.

그 후, 낙동강 서쪽의 여러 가야는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다시 연맹체를 이루었다. 고령의 대가야는 질 좋은 철을 많이 생산하였고, 좋은 농업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더구나 대가야는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5세기 이후 금관가야를 대신하여 가야 연맹체의 중심 세력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도움글

금관가야

건국 설화에 의하면, 시조인 수로왕은 부족장 9명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다고 한다(42). 금관가야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철을 중국의 군현과 왜에 수출하는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해상왕국으로 번영을 누려 낙동강 하류의 여러 가야를 대표하는 맹주국으로 등장하였다. 김해 대성동 유적이나 부산 복천동 유적 등에서 나온 많은 유물은 당시 가야의 국력과 왕권이 강성하였음을 보여 준다.

고구려의 가야 연맹군 공격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신라 내물왕의 구원 요청을 받아 백제, 가야, 왜의 연합 세력을 낙동강 중⋅하류 지역까지 추격하여 섬멸하였다.
수로왕릉 | 경남 김해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