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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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교 국사 7차
  • Ⅳ. 고려의 성립과 발전
  • 2. 무신 정권의 성립
  • [1]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왜 일어났는가?
  • 사회 불안

사회 불안

고려 사회는 12세기 이후 점차 변동하였다. 과거를 통해 중앙으로 진출한 관료 가운데 일부는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거나 뛰어난 학문으로 중요한 관직을 차지하면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이나 가문의 사람들을 중요한 관직에 앉혀 권력을 유지하려 하였다. 따라서, 과거를 통해 정계에 진출한 유능한 신진 세력은 정치에서 소외되어 불만이 많았으며, 이로 인해 불안한 정치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일부 관리와 권세가들은 국가에서 전시과로 받은 토지를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고리대 등을 통해 일반 백성들의 땅을 빼앗는 등 경제적 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백성들은 권세가들에게 토지를 빼앗겨 생계가 어려운데다가 여진 정벌로 인한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도는 현상이 전국에 걸쳐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개경은 지덕이 쇠하여 수도로서 적합하지 않으니 도읍을 옮겨야 한다.”는 풍수지리설이 성행하는 등 사회 전반에 위기 의식이 널리 퍼졌다.

전시과

고려 시대에 관리를 지위에 따라 18등급으로 나누고 등급에 따라 일정한 토지와 땔감 채취지를 나누어 준 토지 제도였다.

풍수지리설

산세나 지형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상으로, 신라 말에 중국에서 전래되어 고려 때 크게 유행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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