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의 항쟁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었던 삼별초는 개경 환도에 반대하여 대몽 항쟁을 계속하였다. 이들은 강화도에서 멀리 진도로 내려가 여⋅몽 연합군과 싸웠다.
진도가 함락되자 그 일부는 다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결국 진압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삼별초의 대몽 항쟁은 고려인의 자주 정신을 보여 준 것이었다. 이로써 40여 년간에 걸친 몽골과의 전쟁은 끝났다.
삼별초
최우가 야간 경비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가 확대된 것으로 좌별초, 우별초, 그리고 몽골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군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을 일컫는다.
도움글
⋅ 고려의 장기간에 걸친 대몽 항쟁의 결과 ⋅
뒤에
원종으로 즉위한 고려의 태자가 1259년에 강화를 위해 원의
쿠빌라이를 만났다. 그 때
쿠빌라이는 “고려는 만 리나 되는 나라이다. 옛날 당
태종도 몸소 쳐들어갔으나 항복받지 못했는데, 이제 그 세자가 스스로 왔으니 하늘의 뜻이다.”라고 하면서 크게 반가워했다. 그는 고려의 끈질긴 항쟁으로 고려를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한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면서 앞으로 고려의 제도와 풍속을 존중하겠다는 정책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