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화약을 맺은 후 농민군이 해산하자, 정부는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궁궐을 침범하였으며,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 이처럼 일본군의 침략 행위가 노골화되자, 농민군은 일본군 타도를 내세우며 다시 일어났다.
서울을 향해 북상하던 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하여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근대적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당할 수 없어 많은 희생을 치른 채 물러나고 말았다.
농민군은 태인에서 최후의 결사전을 전개하였으나 기울어진 전세를 돌이키지 못하였고, 민가에 숨어 재기를 계획하던 전봉준도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이로써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 우금치 전투 ⋅
청⋅일 전쟁에서 승세를 잡은 일본이 우리 나라의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자, 정부와 화약을 맺고 있던 동학 농민군은 일본을 내쫓기 위해 다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