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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사(中古史) - 제2편 부여족(扶餘族)의 웅비(雄飛) 시대
  • 제3장 삼국의 쟁란

제3장 삼국의 쟁란

고구려(高句麗)의 고국원왕(故國原王)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百濟)를 정벌하자, 백제의 근초고왕(近肖古王)이 또한 태자(太子)로 하여금 맞서 싸우게 하여 5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고국원왕이 끝내 날아온 화살에 맞아 목숨이 다해 죽자[崩] 이때부터 두 나라가 원수지간이 되어 서로를 공격하였다. 광개토왕(廣開土王)은 직접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백제의 여러 성(城)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장수왕(長壽王)은 승려[浮屠] 도림(道琳)을 몰래 보내서 백제 개로왕(蓋鹵王)을 설득하여 궁궐과 누각을 화려하게 만들게 하여 국력을 피폐하게 하였다. 이어 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정벌하여 백제의 왕을 죽이니, 이로부터 거의 10년 동안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백제의 성왕(聖王)은 신라(新羅)와 병력을 합하여 고구려를 치고자 하였으나, 신라의 진흥왕(眞興王)이 이를 따르지 않고 도리어 고구려와 통교(通交)하였다. 이에 성왕이 분노하여 신라를 대거 공격하였다가 신라의 장수 김무력(金武力)에게 피살당하니, 양국간의 외교가 단절되었다.

신라는 탈해왕(脫解王)의 시대에 여러 차례 백제 다루왕(多婁王)의 침공을 받았고, 그 후로 벌휴왕(伐休王)부터 미추왕(味鄒王)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변경에서 계속 전투가 벌어졌으나, 고구려에 대해서는 대체로 친한 관계 맺기를 위주로 하여 내물왕(奈勿王)은 그 왕자 실성(實聖)을 볼모로 보내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신라에 침입해 온 일본(日本)의 병사들을 격파하여 신라를 구원하였다. 눌지왕(訥祗王)의 시대에는 신라가 고구려의 변방에 있는 장수를 죽이고 또 백제를 구원하였기 때문에 화친이 깨졌다. 신라 소지왕(炤知王)1)원문에는 소지왕(炤智王)으로 되어 있으나, 소지왕(炤知王)으로 바로잡는다.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구려의 장수왕과 문자왕(文咨王)이 여러 차례 신라의 북쪽 변경 지역을 침공하므로 신라 왕이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격파하였고, 또 백제에 고구려가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면 신라가 또한 가서 구원하였다. 진흥왕은 백제와 국교를 단절하였고, 또 김거칠부(金居柒夫)를 보내 고구려의 10개 군을 공격하게 하여 차지하였다. 진평왕(眞平王)의 시대에는 백제가 신라의 가잠성(椵岑城)2)원문에는 가령성(椵領城)으로 되어 있으나, 가잠성(椵岑城)으로 바로잡는다.을 공격하여 함락하자 현령(縣令) 찬덕(讚德)이 성문을 닫아 걸고 굳게 지켰다. 그러나 성안의 양식과 물이 다 떨어져서 성이 장차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찬덕이 하늘을 우러르며 크게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우리 왕이 성 전체를 나에게 위임하였는데 내가 이를 보전하지 못하였으니, 비록 죽게 되더라도 원혼이 되어서 백제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라고 하고는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 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선덕왕(善德王)의 시대에도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대체로 당시의 삼국(三國)은 인종과 문자가 같은[同種同文] 나라인데도 힘을 모으고 마음을 합쳐서 일본과 지나(支那) 등 외족을 물리치지는 않고 도리어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여 전쟁을 날마다 일삼았으므로 골육상쟁(骨肉相爭)3)뼈와 살이 서로 다툰다는 뜻으로 형제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툼을 의미하는 한자 성어이다.을 하다가 마침내 외적의 힘을 빌려 같은 인종의 나라를 멸망시키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탄식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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