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1619)에 건주 여진의 병사[建州兵]가 요동(遼東)을 침략하였다. 명(明)나라에서 [조선에게] 원병(援兵)을 청하자 [광해군은] 강홍립(姜弘立)을 도원수(都元帥)1)원문에는 도원사(都元師)로 되어 있으나, 도원수(都元帥)로 바로잡는다.를 삼고 김경서(金景瑞)를 부원수(副元帥)로 삼아 [파병하였다. 강홍립이 이끄는 군사들이] 심하(深河)에 이르렀지만, 광해군(光海君)의 밀지(密旨)를 받은 강홍립은 적과 한 번 싸워 보지도 않고 투항(投降)하였고, 김응하(金應河)는 전사하였다. 김경서는 강홍립이 항복할 때 같이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으나, 적을 죽이려고 꾀하다가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