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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20년(1694)

갑술 20년(甲戌二十年, 1694)에 함이완(咸以完)이 김춘택(金春澤), 한중혁(韓重赫) 등이 은을 주고받으며 모아 폐비를 복위하고 국면을 전환[復后換局]하려 했다고 고발하였다. 이에 김춘택 등을 잡아 추국하게 되었는데, 이날 밤 2경(二更)에 시사(時事)가 갑자기 변하여 국문에 참여한 대신 민암(閔黯) 이하의 관작을 모두 삭탈한 후 섬으로 귀양 보내고, 왕비 민씨(閔氏)를 왕후로 복립하셨다. 장씨(張氏)가 왕비로 책봉되며 받은 새수(璽綬, 옥새)를 거두고 이전과 같은 희빈(禧嬪)의 작(爵)을 내려 세자가 아침에 문안을 드리고 저녁에 잠자리를 보아 드리는 예(禮)는 이전과 같이 하게 하셨다. 오두인(吳斗寅)을 영의정(領議政)으로, 박태보(朴泰輔)는 정경(正卿)으로 추증하셨고, 민종도(閔宗道)의 관작(官爵)을 추탈(追奪)하셨으며, 권대운(權大運)과 목내선(睦來善), 민암 등은 섬으로 유배 보내고, 목창명(睦昌明) 등【모두 기사(己巳, 1689)에 임금의 뜻에 순종했던 사람들】은 먼 곳으로 귀양 보냈다. 송기태(宋基泰)가 그 부친 송시열(宋時烈)【예론(禮論) 때문에 정읍(井邑)으로 귀양 가서 사사(賜死)됨.】이 남긴 소(疏)와 효종(孝宗)의 어찰(御札) 3폭(幅)을 올리니 왕께서 “선경(先卿)은 실로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나, 내가 홀로 선경을 저버렸으니, 아득하게 먼 구천(九泉)에 누가 나의 슬픔을 알겠는가?”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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