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1830)에 대조(大朝)가 ‘신독(愼獨)’이란 글자를 돌에 새겨서 내려 주었다. 명(銘)에 이르기를, ‘옥을 캐어 반듯하게 깎아서, 갈고 다듬어 글자를 새겼으니, 그 글이 어떤 것인가,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고 했네, 성상의 뜻이 권하시니, 언외의 뜻이 드러나도다, 신이 절하고 명을 지어서, 종신토록 마음에 새기리라.’라고 하였다.
여름 6월 6일 임술(壬戌)에 왕세자(王世子)께서 승하하셨다. 대조(大朝) 복제(服制)를 참최(斬衰) 3년으로 마련하고 빈궁(殯宮)에 효명(孝明)이란 시호를 내렸다. 왕세손(王世孫)【헌조(憲祖)】을 책봉하셨다. 고(故) 정랑(正郞) 김일손(金馹孫)을 정경(正卿)으로 가증(加贈)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