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 원년(乙未元年, 1835)에 여러 도의 이포(吏逋, 아전이 공금을 쓴 빚)를 친족에게서 징수하는 폐단을 금지하라 명하셨다. 문과(文科)에서 답안 내용을 제3자가 다시 쓰게 하여 필체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혁파하였다. 영남(嶺南) 사람 이덕후(李德垕)가 97세의 나이로 회시(會試, 초시 급제자들이 서울에서 보는 2차 시험)에 응시했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왕께서 들으시고는] 특별히 오위장(五衛將)에 제수하셨다. 좌의정(左議政) 홍석주(洪奭周)가 아뢴 말에 따라, 좨주(祭酒) 송치규(宋穉圭)와 부호군(副護軍) 송계간(宋啓幹)을 가자(加資)하셨다. 양의공(襄毅公) 김경서(金景瑞)의 서원에 편액(扁額)을 하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