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사 중
  • 고려기(高麗紀)
  • 문종(文宗)
  • 기원전 317년

기원전 317년

을묘(乙卯)

요(遼)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에 앞서 요나라 왕이 압록강(鴨綠江)을 넘어 경계를 삼고자 강의 동쪽 언덕에 성을 쌓고 선교(船橋)를 설치하였다. 여러 번 철거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요나라 왕이 들어주지 않으므로 이때에 이르러 사신을 파견하여 요청한 것이다. 박인량(朴寅亮)이 표(表)를 만들어 이르기를, “온 천하가 이미 왕의 토지와 왕의 신민이 아닌 것이 없는데 한치 남짓한 땅을 가지고 어찌 반드시 내 땅이고 내가 다스려야 한다고 합니까? 문양(汶陽)의 옛 땅을 돌려주어1)문양은 노(魯)나라의 땅이었는데 제(齊)나라에 빼앗겼다가 뒷날 제나라와 진(晉)나라가 회맹함에 따라 다시 노나라에 돌려주었다. 폐허가 된 고을을 위무하고 편안하게 하여, 장사(長沙)에서 졸수(拙袖)를 돌리니2)전한(前漢) 경제(景帝)가 장사의 정왕 발(發)에게 춤을 추게 하였는데 정왕의 소매가 잘 돌지 않자, 그 까닭을 물어 보니 자기 나라는 땅이 좁고 인구가 적어 소매가 잘 돌지 않는다고 말한 고사로 땅이 좁고 인구가 적은 것을 비유한 말이다. 좋은 시절에 춤을 추나이다.”라고 하자 요나라 왕이 보고 그 일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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