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 혁거세 60년 ○ 고구려 유리왕 21년 ○ 백제 온조왕 21년】
고구려가 국내성(國內城)으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慰那巖城)을 쌓았다. 설지(薛支)가 왕에게 말하기를, “위나암성은 산수가 깊고 험하며 토지가 오곡을 가꾸기에 마땅합니다.” 하자 도읍을 옮기면 백성들에게 이로울 뿐만 아니라 전쟁도 면할 수 있으므로 왕이 마침내 천도하였다. 【위나암성은 지금의 의주(義州)이다.】
○ 고구려에서 태자 해명(解明)에게 여후(麗侯)를 내렸다. 【이 때 신(新)의 왕망(王莽)이 왕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호(胡)를 정벌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자 왕망이 노하여 왕을 강등하여 후(侯)로 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