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1
  • 삼국기(三國紀)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 〔신라 선덕여왕 11년 / 고구려 보장왕 원년 / 백제 의자왕 2년〕
  • 기원전 747년 을사

기원전 747년 을사

【신라 선덕여왕 13년 ○ 고구려 보장왕 3년 ○ 백제 의자왕 4년】

당나라 황제가 고구려를 친히 정벌하자 신라가 병력 3만을 보내 도왔다.

○ 신라 여왕이 훙하였다. 여왕은 인물됨이 관대하고 인자하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당나라 황제가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보내오니 여왕이 말하기를, “이 꽃은 매우 아름다우나 꽃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그 씨를 심으니 과연 그러하였다. 또 하루는 옥문지(玉門池)에 많은 두꺼비가 모이자 여왕이 말하기를, “두꺼비는 군대의 형상이다. 내가 서남쪽에 옥문곡(玉門谷)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생각건대 이웃 나라의 군사가 그 골짜기에 이른 것 같다.” 하고 장수에게 명하여 수색하게 하니 과연 백제 병사가 주둔하고 있어서 급습하여 격살하였다. 또한 죽을 날을 예언하였는데 과연 기약한 날에 이르러 징험하니 세상에서는 여왕이 세 가지 앞일을 알고 있다[知幾三事]고 하였다. 종제(從弟) 승만(勝曼)이 즉위하니 곧 진덕여왕(眞德女王)이다. 【이름은 승만이다. 선덕여왕의 동생이고 국반(國飯)의 딸이다.】 재위는 9년이다.

○ 당나라 황제가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갔다. 처음 당나라 군대가 요동에 이르러 안시성을 공격하며 60일 동안 대치하였지만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황제가 요동 지방은 북쪽으로 위치하여 추위가 일찍 찾아오고 군량미마저 떨어지자 군사를 이끌고 돌아오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에 군사들이 성 아래에서 함성을 지르며 위용을 과시하며 회군하였다. 성주가 성에 올라가서 배사(拜辭)하니, 황제가 성을 굳게 지킨 것을 가상하게 여겨 비단 백 필을 하사하여 임금을 섬긴 일을 격려하였다. 【살펴보면 “안시성은 요동에 있고 성주(城主)의 이름은 양만춘(楊萬春)이다.”라는 내용이 『태종동정기(太宗東征記)』에 보인다. ○ 또 이색(李穡)의 「정관을 읊다(詠貞觀)」는 시를 살펴보면, 이르기를 “주머니 속 하나의 물건일 뿐인데, 어찌 알았으랴? 화살이 눈에 떨어지는 것을[謂是囊中一物耳 那知玄花落白羽]”라고 하였다. 이는 태종이 안시성 싸움에서 화살에 맞아 눈을 다친 사실을 말한 것이다. 김종직(金宗直)이 선집한 시 『청구풍아(靑邱風雅)』 주(註)에는 “태종이 눈을 다친 일은 역사책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이색이 중국 유학 중에 어찌 들은 바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도 “당시 사관(史官)이 필시 중국을 위하여 숨긴 것이니, 기록하지 않은 것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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